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1967년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5개국으로 출발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부는 공산주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1984년 영국에서 독립한 브루나이가 들어왔고,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경계 대상이던 베트남과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도 가입해 지금의 체제가 완성됐다.
비슷한 나라들이 모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종과 언어, 문자가 다르고 종교도 제각각이다. 내륙국도 있고 섬나라도 있다. 정치체제도 민주주의부터 공산주의, 권위주의, 군부독재, 전제군주제까지 다양하다.
거리상으론 가까울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미얀마 최북단에서 인도네시아 동쪽 끝 파푸아까진 무려 6천㎞ 넘게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미국 알래스카까지 거리다. 회원국 간 직항로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10개국이 뭉칠 수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들은 아세안이란 지붕을 함께 쓰고 한 몸처럼 다른 나라를 상대한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미•아세안 정상회의 같은 식이다.
각각은 작지만 하나로 뭉치면 영향력은 커진다. 인구 7억 명에 국내총생산(GDP)은 3조 달러(약 4천조원)가 넘는다. 최근에는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대체할 세계적 생산기지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가 아세안과 교류하기 위해 줄을 선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안으로는 곪고 있다. 회원국인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유혈 사태를 놓고 내부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어서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자 이듬해 2월 유혈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자 아세안은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미얀마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불러들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흘라잉 사령관을 압박했고, 그는 미얀마 내 폭력 중단 등 5개 항에 전격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반대 세력에 대한 유혈 진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권 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에 의해 3천명 이상이 사망하고 2만명 이상이 구금됐다.
이처럼 미얀마가 약속을 어겨도 아세안은 합의 이행을 촉구할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은 강경 대응을 주장하지만, 태국이나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은 내정 불간섭이라는 아세안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인권 단체들은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미얀마에 대한 강경 대응이 자국의 정치체제나 인권 상황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미얀마 군부에 침묵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9∼11일 인도네시아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렸다. 국제사회는 아세안이 미얀마 사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 성과는 없었다.
이를 놓고 자카르타 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아세안이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미얀마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혼란이 아세안 각국으로 퍼져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미얀마 사태 이후 말레이시아로 넘어간 미얀마 난민은 30만명에 달한다. 혼란이 계속되면 아세안에 대한 외부의 투자 매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세안에 대한 실망도 커지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아세안을 발판 삼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길 희망하지만, 국제사회는 안방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기대감을 낮추고 있다.
전 세계는 아세안의 놀라운 발전을 기대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동시에 미얀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위기관리 능력도 우려 속에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