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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짓밟힌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슬픈 노래 “우리를 잊지 마세요”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 마리아 퀼란탕(왼쪽)과 필라 갈랑(오른쪽) / BBC인도네시아

*BBC 인도네시아가 필리핀 내 위안부 피해자 단체 ‘말라야 롤라스’를 집중 조명했다.

필리핀의 작은 농촌 마을 마파니퀴. 언뜻 80-9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방에 지방이를 짚고 들어선 필라 갈랑(Pilar Galang) 할머니는 오늘 왜 자신이 평소 가장 아끼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88세의 이 여성은 시누이인 마리아 퀼란탕(Maria Quilantang) 씨를 흘끗 쳐다본다.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는 듯하다.

두 여성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소위 ‘위안부’라 불리는 일본군의 성 노예들이었다. 당시 한국, 필리핀,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성 노예로 착취를 당했다.

마파니퀴 마을에 사는 약 20명의 여성들은 필리핀에 있는 생존 피해자들이다. ‘말라야 롤라스(Malaya Lolas•자유로운 할머니들)’라는 그룹을 지어 활동한다.

10대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끌려간 이들은 핏빛 집에 갇혀 일본군의 성 노예로 살았던 끔찍한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일본의 공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20만명이 달하는 일본군 위안부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현재 한국인 생존 피해자는 9명이 전부다. 대만의 마지막 남은 피해자는 지난 5월 별세했다.

필리핀 정부는 1951년 일본과 전시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했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죽기 전에 정의가 실현되길 바랄 뿐이다. 이제 몇 명 안 남았다”

‘말라야 롤라스’ 할머니들은 그들의 사연을 노래 한 곡에 꾹꾹 눌러 담아냈다. 할머니들은 이 노래로 세상에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울며 애원했다.
조금의 동점심이라도 보여달라고.
하지만 그들의 야수 같은 욕망은
오로지 쾌락만을 갈망한다.
내 나이 14살에 나는 그렇게 타락해갔다.”

말라야 롤라스를 이끌고 있는 퀼란탕씨는 빈랑 열매를 씹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쯤이야 노래방에서 한 곡조 뽑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본군이 여성들을 성착취했던 ‘핏빛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 / BBC 인도네시아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8살 때 논 한 가운데 핏빛 집에서 성폭행 당했던 기억 때문이다. 아직도 그 집을 볼 때마다 끔찍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지금은 유령 사냥꾼이나 역사학자들만 드나드는 폐가에 불과하지만.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Manila)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칸다바(Candaba) 지역 농촌 마을 마파니퀴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퀼란탕씨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종종 어둡고 끔찍했던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비에 흠뻑 젖은 땅을 보면 소발굽 자국에 고인 빗물이 유일한 마실 물이었던 참혹했던 순간이…

그러나 그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농부와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었던 자신과 달리 대부분의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역사회와 가정 안에서 차별을 견뎠어야 했다는 것이다.

말라야 롤라스의 최고령자인 막시마 델라 크루즈(Dela Cruz)씨는 더 이상 모임에 나갈 수 없다. 94세 그녀는 이제 몸을 스스로 가눌 수조차 없어 침대에 누워 지낸다.

몇 년까지만 해도 크루즈 씨는 위안부 피해자 투쟁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많은 시위에 참여했다. 일본, 홍콩, 심지어 유럽에도 가봤다”며 “변호사들이 우리를 여러 나라로 데려다 주었다. 비록 몸은 약해졌지만 과거의 모든 것이 여전히 선명하다”고 크루즈씨는 말한다.

전쟁 이후 크루즈씨는 부모님의 농장 일을 도와야 했기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16세에 혼인하던 당시 결혼식도 없이 닭 한 마리를 가족들과 나눠 먹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그녀는 “일본이 우리를 조금만 도와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읊조리듯 말했다.

필리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때마다 일본은 “자국 정부에 요청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말라야 롤라스의 탄원은 대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올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필리핀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가해국인 일본이 배상하도록 하는 노력을 소홀히 했고, 이는 권리 침해라는 판단을 내놨다. 이에 필리핀 정부다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궁은 “재조사가 이뤄졌다”며 6개월 안에 검토해 서면 답변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말라야 롤라스의 변호인 버지니아 수아레스(Virginia Suarez)씨는 “(일본의) 사과는 그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피해자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누구도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일본은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BBC에 밝혔다.

마파니퀴는 암울했던 전쟁의 역사보다 지금은 오리알과 틸라피아 농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BBC 인도네시아

인니투데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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