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못 지킨 미안함도 있지만
‘옛 정 생각 안해’ 섭섭함도 혼재
첫 수출, 개발만큼 중요…
판 깨기보단 미래 보며 관계 다잡아야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하는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KF-21) 개발 사업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 기술로 4.5세대, 마음만 먹으면 5세대 스텔스 전투기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최신 전투기를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었는데 돈은 제대로 안 내고 기술만 가져가려 든다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분노다.
2016년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총개발비 8조1천억원 중 20%를 부담하고, 각종 개발 기술과 시제기 1기를 이전받기로 했다. 하지만 재정 문제를 이유로 지금까지 3천800억원만을 납부하고 1조원가량 연체 중이다.
이마저도 납부 기한을 2034년으로 8년 연장해 달라고 했다가 한국이 거절하자 개발사업이 끝나는 2026년까지 납부할 수 있는 6천억원만 내고 기술이전 축소는 감수하겠고 제안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근무하는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KF-21 개발 관련 자료를 유출하려다 적발됐으니 한국인으로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KAI는 군사기밀이나 방위산업기술보호법에 저촉되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남은 분담금을 포기하더라도 인도네시아와 협력을 끝내라며 들끓고 있다.
그러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사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얼굴에 철판 깔고 ‘배 째라’는 식일까.
현지에서 본 인도네시아는 일단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을 가진 걸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지 콤파스는 지난달 ‘KF-21, 인도네시아 협력 일관성에 대한 비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자국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제적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부가 재정이 어렵다면서 카타르와 중고 전투기 구매 논의를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현실적 한계에 대한 걱정도 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이번 사업에서 한국으로부터 기술 이전이 계획보다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인도네시아는 2016년부터 KAI로 100명이 넘는 기술진을 보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자 기술진을 모두 귀국시켰고 이후 사실상 국경이 막히면서 2년간 개발 사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남은 개발 기간에 공백기를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걱정한다.
한 발 더 들어가면 섭섭함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처음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항공기 KT-1과 첫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수출길을 터준 나라다.
특히 T-50 수출 협상 과정에서 우리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가 발각되는 악재가 터졌지만, 인도네시아가 형식적인 유감 표명만 하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았고 구매 계약도 체결했다.
KF-21 개발도 인도네시아가 없었다면 시작할 수 없었을 사업이다.
사업 추진 당시 우리 정부는 성공 가능성이 작다며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나라와 공동 개발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위험을 나눠 질 나라를 찾았지만,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참여 의사를 보인 곳은 인도네시아뿐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개발 파트너가 됐다.
이런 과거가 있다 보니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 인도네시아 언론은 한국이 옛정은 생각하지 않고 인도네시아를 너무 압박한다며 섭섭한 마음을 비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감정에 휩쓸려 이대로 협력을 끝내기엔 양국 모두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우리로서는 첫 수출이다. 보수적인 방산 업계에서 첫 수출은 개발만큼 중요한 과제다.
프랑스의 자랑 라팔 전투기는 2000년 실전 배치됐지만 2015년에야 첫 해외 수출 계약을 따냈다.
우리의 T-50도 개발 이후 한참을 수출에 성공하지 못해 애물단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인도네시아로 처음 수출한 뒤 T-50과 T-50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FA-50을 여러 나라에 팔 수 있었다.
반면 KF-21은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48대를 양산해 수출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우리로서는 인도네시아와 협력이 순탄하게 흘러가면 첫 수출이라는 높은 허들을 쉽게 넘을 수 있다.
방산 전문가들은 개발부담금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수출만 성사되면 수출 대금이나 수리 부속 사업 등을 생각할 때 이득이 훨씬 크다고 설명한다.
수출 대금은 제대로 내겠느냐는 시선이 있지만 개발사업과 달리 무기 구입은 수출금융지원을 통하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 실제로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수출했던 무기 중 자금조달이 문제 된 적은 없었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도 한국과 끝까지 협력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수천억 원을 투자했지만 약속한 시제기나 각종 기술 자료는 개발이 끝나야 받을 수 있다. 개발사업을 잘 마무리해야 기술도 얻어갈 수 있는 것이다.
또 개발 이후엔 인도네시아에서 양산에 들어가야 한국과 양산 협력을 통해 부족한 기술을 만회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과거보단 미래 이익을 생각해 협력을 다잡고 새로 출발할 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