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100명이 142가정 투입돼
현재 98명이 169가정서 근무
임금체불•이탈에 ‘최저임금 논란’도 계속…
“본사업 전 신중 점검 필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서울 시내 가정에 투입된 지 3일로 한 달째를 맞는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함께 추진한 이번 시범사업은 최저임금 적용을 둘러싼 논쟁 외에도 임금체불과 일부 가사관리사의 무단이탈, ‘통금’ 등 한 달간 여러 논란을 끊임없이 낳았다.
정부가 내년 1천200명 규모 본사업 계획을 밝힌 가운데 전문가들은 시범사업 초반에 잇따라 불거진 문제점들을 신중하게 점검.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달 새 24가정 취소•51가정 추가…
가사관리자 2명 ‘이탈’
3일 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 기준으로 필리핀 가사관리사 98명이 서울시 169가정에서 일하고 있다.
한 달 전인 9월 3일 100명이 142가정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 사이 24가정이 서비스 개시 이후 중도 취소를 했고 51가정이 신규 신청해 매칭됐다.
주요 취소 사유는 변심, 시간 조정의 어려움 등이었다고 노동부는 전했다.
무단 이탈한 2명의 가사관리사 외에 98명이 169가정에서 일하는 것이니, 상당수가 2개 이상의 가정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첫 한 달 동안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 나왔다.
100명의 가사관리사들은 지난 8월 6일 입국해 4주간 160시간의 특화교육을 받고 투입됐는데, 첫 급여일인 8월 20일 지급됐어야 할 교육수당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다.
가사관리사들과 근로계약을 맺은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업체 2곳이 1인당 95만원의 수당을 미리 지급한 후 노동부에 유급휴가훈련지원을 신청해 훈련비를 지원받게 돼 있었는데, 업체들이 유동성을 이유로 제때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8월에 나갔어야 할 교육수당은 뒤늦게 모두 지급됐지만, 임금이 후불로 지급되기로 하면서 9월 20일에도 8월 20일∼9월 2일의 2주치 교육수당만 입금됐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달 15일 가사관리사 2명이 근무지를 이탈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근무지 이탈 배경에는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 사실이 알려진 후 서울시가 마련한 긴급 간담회에선 오후 10시로 돼 있는 숙소의 ‘통금’이나 이동•대기 시간에 대한 불만 등도 나왔다.
이에 노동부와 서울시는 월급제 외에 주급제, 격주급제 등을 허용하고, 체류기간도 7개월에서 최장 3년으로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임금 논란은 ‘진행형’…
“너무 비싸” vs “내국인과 차등 불가능”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의 임금 수준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임금은 하루 8시간 전일제 근무를 기준으로 올해 최저임금(시급 9천860원)을 적용한 월 206만원 수준이다.
이용가정에서 지불하는 금액은 238만원으로,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원)의 절반에 가깝다 보니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나왔고, 실제로 초기 신청 가구의 40%가량이 강남 3구에 몰렸다.
시범사업을 주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가사관리사 비용이 이보다 훨씬 저렴한 홍콩과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들며 외국인 가사관리사 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수차례 주장했다.
여당 내에서도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이에 반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것은 국제기준(국제노동기구•ILO 111호 협약), 국내법(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에 배치된다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선 필리핀 가사관리자 임금을 더 낮추면 이탈이 더 발생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현재 법의 틀 안에선 외국인 가사관리사에만 임금을 낮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최저임금법에도 국적에 따른 차등 지급 규정은 없다.
이규홍 이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국제협약 등을 고려할 때 최저임금 미만으로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더구나 외국인 근로자들은 돈을 벌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을 낮추면 불법 체류를 하더라도 사업장을 이동하려는 욕구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시장의 경우 최저임금 차등화 외에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적계약 형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고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예상했던 문제들 터져…본사업 추진 때 신중해야”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까지 1천200명 규모를 목표로 본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6월 밝혔다.
그러나 시범사업 초반부터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잇따라 불거지자 노동계는 “졸속 행정에 따른 예견됐던 부작용”이라며 관련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최영미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장은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추진한 데 따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노동계 등과 논의해야 하는데, 주급제나 기간 연장 등 ‘땜질’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지부장은 “중개 앱이 등장하면서 내국인 가사관리사들도 업무 한 시간 전에 취소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반면, 흔히들 얘기하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선 대체로 한 가정에서 풀타임으로 일한다”며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그렇게 기대하고 왔을 텐데 중도 취소 가정이 생기며 자꾸 일하는 곳이 바뀌고, 밥 먹을 시간과 장소도 없이 여러 곳을 이동해야 해 많은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자 가정과 가사관리사들의 기대치 간에 ‘거리’가 있음에도 이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채 사업이 진행돼, 이용 가구의 취소가 속출하고 가사관리사들의 애로사항도 커졌다는 것이다.
이규홍 부원장은 “고용기간이 6개월로 짧은 점도 미스매치를 낳을 수 있다”며 “또 현재도 관리 책임이 애매한 상황에서 가사관리사가 대규모가 됐을 때 관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본 사업 시행 전에) 여러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상대 빈곤율이 상당히 높고, 고령층에 막 진입한 세대엔 고학력 인재 등이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외국인 도입에 집중하기보다 ‘젊은 노인’ 일자리 정책과 연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최 지부장은 “내년 1천200명 확대 계획을 취소하고, 지금이라도 긴밀한 모니터링 체계를 노동계 등과 함께 갖춰야 한다”며 “아울러 가사서비스 관리업체들도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