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17→20%로 오르자 당혹…
추가 협상 채비
“동남아, 미국에 협상카드 부족”…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서 공동대응 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브라질과 필리핀 등 8개국에 내달 1일부터 적용할 상호관세 세율을 적시한 서한을 발송하자 동남아시아 당사국들이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비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 회원국인 브라질이 정치적 이유로 50%의 보복성 관세를 얻어맞게 되자 다른 회원국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불똥이 자국에도 튈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인도, 미국과 협상 막바지인데…
“브릭스 문제로 난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10%의 기본관세만 적용했던 브라질에 자유로운 선거와 미국인들의 근본적인 표현 자유가 공격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호관세율 50%를 통보했다.
이에 인도나 인도네시아는 브릭스에 대한 보복성 관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브릭스는 지난 6일 정상회의 후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상호관세에 비판했고, 특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7일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브릭스의 반미정책에 동조하는 국가는 모두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브릭스에 대한 경고로 미국과 무역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던 인도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며 인도 정부가 외교적으로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인도에 26% 상호관세를 부과했으며 두 나라는 무역 협상 체결 막바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인도에는 새로운 관세 서한을 보내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브릭스 회원국인 인도네시아는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 경제조정부 장관을 대표로 한 협상단을 미국으로 보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과 같은 32%의 관세율을 통보받았다.
인도네시아는 여러 미국 기업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미국산 수입품 확대와 미국 내 투자 등을 약속하는 등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이달 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지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브릭스에 대한 보복 조치가 인도네시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리핀, 추가 협상 채비…
브루나이 “우린 대미 무역적자” 억울
이날 미국으로부터 새로 20%의 상호관세 부과를 통보받은 필리핀은 다급하게 추가 협상 채비에 나섰다.
호세 마누엘 로무알데스 주미 필리핀대사는 “우리는 여전히 추가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해 필리핀 관리들이 미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초 베트남(46%), 태국(36%), 캄보디아(49%), 말레이시아(25%)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보다 상당히 낮은 17%의 상호관세가 예고된 필리핀은 내심 반사이익까지 기대하면서 협상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인접한 베트남이 협상 타결로 관세율이 20%로 떨어진 데다 필리핀 관세율은 당초 예고보다 3%포인트 올라 베트남과 같은 수준이 됐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미국산 상품에 대한 수입 관세 인하 등 양보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브루나이의 관세는 24%에서 25%로 1%포인트 올랐다.
브루나이의 경우 미국과 교역 규모가 크지 않지만 지난해 미국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바 있어 미국의 관세 부과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브루나이는 대미 무역적자를 말하며 싱가포르와 같은 10% 관세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으로 의류와 차, 고무 등을 수출하는 스리랑카에 대한 관세는 44%에서 30%로 크게 떨어졌다.
스리랑카 경제지 이코노미넥스트는 고무 수출 경쟁국인 태국(36%)이나 인도네시아(32%), 의류 산업 경쟁국 방글라데시(35%)보다 관세가 낮은 것은 다행이라고 전했다.
다만 고무 경쟁국인 말레이시아(25%), 의류 경쟁국인 베트남(20%), 코코넛과 활성탄 수출 경쟁국 필리핀(20%)보다는 높은 관세율이라며 정부가 경쟁국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서한에서 ‘아누라(Anura) 쿠마라 디사나야케’ 스리랑카 대통령의 이름을 ‘아루나(Aruna) 쿠마라 디사나야케’로 오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AFP 통신은 미국발 관세로 인해 섬유, 신발 등 소비재 제조 허브인 동남아시아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됐지만 자원이나 기술 등이 부족해 미국의 관세 인하를 끌어낼 협상 카드가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이에 오는 12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미국에 대한 공동 대응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에게 아세안의 공통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