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에서 쇼핑몰에 사람은 많지만 구매는 이뤄지지 않는 소비 행태를 반영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묻기만 하는 집단을 뜻하는 ‘로하나(Rombongan hanya nanya, Rohana)’와 물건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 집단을 뜻하는 ‘로잘리(Rombongan jarang beli, Rojali)’가 그것이다.
사소한 변화쯤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도시 중산층의 소비 방식이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중산층의 1인당 월 소비 지출은 빈곤층의 3.5배~17배로, 2025년 기준 월 210만 루피아~1030만 루피아 수준이다. 인도네시아 통계청(BPS)의 2024년 국가사회경제조사(Susenas)에 따르면 이들은 전체 인구의 17.1%(4820만명)로, 국내 소비의 38.3%를 담당한다.
그러나 최근 인도네시아 중산층의 소비 지출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제도권 일자리 부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노동부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6월까지 총 4만2385건의 일자리 감소가 발생했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한 수치다. 정규직 근로자 비율도 2024년 2월 40.8%에서 2025년 2월 40.6%로 소폭 감소했다.
소득기대지수(IEP)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에 따르면 2025년 6월 IEP는 133.2로 2022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임금보조금 지급 등의 지원책을 펼쳤지만, 중산층은 사실상 혜택에서 제외됐다.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위축되며, 체감 경기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잘리-로하나 현상은 중산층에게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이들은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는 수단과 접근성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쇼핑몰 안에서는 매우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만디리 은행의 큐리스(QRIS) 거래 분석 결과 쇼핑몰 내 소비 패턴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인다.
첫째, 서비스 중심의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외식·레저·영화관 등 서비스 중심 매장의 이용 고객 수는 전년 대비 102% 증가한 반면, 패션·생활용품·전자제품 등의 상품 중심 매장의 고객 증가율은 62.5%에 그쳤다. 소비자들이 실물 상품보다 서비스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둘째, 소비자의 구매 행동이 더욱 신중해졌다.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상품 구매는 19.1% 감소했고, 구매 빈도도 24.5% 줄었다. 소비자들은 실제 구매에 앞서 제품 비교와 문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이러한 행태는 서비스 매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진다.
셋째, 온라인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오프라인 거래는 평균 20.1% 감소한 반면, 온라인 거래는 4.2% 감소에 그쳤다. 쇼핑 빈도 역시 오프라인은 14.0% 감소한 반면, 온라인은 1.3% 감소에 그쳐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같은 맥락에서 오프라인 쇼핑몰은 구매 공간이 아닌 엔터테인먼트나 정보 탐색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방문객은 늘어도 구매가 줄어드는 이유다.
최근 몇년간 정부의 정책이 저소득층에 집중되면서 중산층은 외면 받아 왔다. 주거·교육·의료 등 필수 지출은 늘어난 반면 실질 소득은 정체 되었고, 그 결과 중산층의 소비 여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쇼핑몰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빈 쇼핑백’ 현상은 중산층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변화한 소비 구조 속에서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소비자의 행동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오프라인 유통업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쇼핑몰은 단지 ‘물건을 구입하는 장소’를 넘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선사하는 소비 허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인니투데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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