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리 따바난의 카카오나무가 익어가는 풍경은 인도네시아가 지닌 잠재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시아 최대의 카카오 생산국이라는 자부심도 여전하다. 그러나 막상 ‘초콜릿’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카카오 강국임에도 정작 세계 초콜릿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인도네시아가 카카오 다운스트림 산업을 키우려면 생산성 저하, 품질 격차, 비발효원료 사용 같은 구조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리의 차우 초콜릿(Cau Chocolates)의 대표 이 까덱 수르야 프라세띠야 위구나(I Kadek Surya Prasetya Wiguna)는 지난 11월 25일 간담회에서 “농가 단계에서는 병충해, 종자·비료 확보 비용 등 여러 부담이 겹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 단계에서도 비발효 원료를 받는 공장이 많아, 발효 원료만 사용하도록 한 농업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카카오 씨앗은 곰팡이와 병원체를 막기 위해 보통 6~10일 발효 과정을 거친 뒤에야 ‘카카오 빈(bean)’이 된다. 이후 5~10일 건조 과정을 통해 풍미가 안정되고, 로스팅을 거쳐 코코아 파우더나 버터 같은 중간재로 가공된다.
인도네시아 카카오협의회(Dekaindo) 수딴또 압둘라(Soetanto Abdoellah) 회장도 농가가 비발효 빈을 택하는 이유에 대해 “발효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그만큼의 이익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업체가 발효·비발효 빈을 6대4 비율로 섞어 비용을 낮추면서 비발효 빈의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까덱 대표는 “농가가 비발효 빈을 계속 생산하는 한 인도네시아는 저품질 생산국이라는 인식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카카오 생산국 중 비발효 빈을 사용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2005~2015년 세계 3위 카카오 생산국이었지만, 생산량 감소로 2019년부터는 7위에 머물고 있다. 전체 130만 헥타르 가운데 99% 이상이 소규모 농가 소유다.
인도네시아 통계청(BPS)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생산량(약 20만 톤) 가운데 대부분이 국내 가공용으로 쓰였고, 수출은 1만3000톤에 그쳤다. 정부가 2010년부터 카카오 빈에 수출세를 부과하며 국내 가공을 유도한 결과다.
2024년 인도네시아는 코코아 페이스트·버터·파우더 등 중간재 수출이 늘면서 카카오 제품 전체 기준으로는 순수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완제품 초콜릿의 경우 만 보면 수출 2만5000톤, 수입 2만4000톤으로 큰 차이가 없었으며 금액으로는 51만 달러의 순수입을 기록했다.
최대 생산국임에도 인도네시아는 2024년 국내 수요를 맞추지 못해 15만7000톤(약 10억 달러 규모)을 수입해야 했다. 플랜테이션 기금관리청(BPDP) 총괄국장 아디 수찝또(Adi Sucipto)는 “31개였던 초콜릿 공장 중 10곳이 문을 닫았다”며 “원료 수입 비용이 수익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4년과 올해 상반기 서아프리카의 흉작으로 국제 가격이 급등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빍혔다.
까덱 대표는 인도네시아 카카오 농장의 생산성이 헥타르당 연 600kg에 불과해 이상적 수치인 2톤에 크게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재무부 선임 분석가인 눌라이디(Nurlaidi)는 “카카오 나무의 3분의 2가 노목이 되면서 생산량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발리에서 4헥타르의 카카오 농장을 운영하는 니 마데 부디 아유 앙그라에니(Ni Made Budi Ayu Anggraeni, 50)는 “글로벌 시세에 따라 카카오 빈 가격이 책정되면서 마진이 거의 없다”고 했다. 2헥타르 농가 이 끄뚯 빠스 구나와(I Ketut Pas Gunawa, 48)도 “판로가 막히면 중개상을 통해 팔 수밖에 없어 수익이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농가는 2021년부터 차우 초콜릿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으며, 발효 빈을 제공할 경우 글로벌 시세 변동을 반영하면서도 kg당 10만 루피아(5.99달러)의 최저가격을 보장받고 있다.
차우 초콜릿은 그동안 싱가포르·말레이시아·카타르 등지에 수출해 왔으며, 현재는 전체 생산량의 약 10%를 폴란드와 호주로 보내고 있다. 까덱 대표는 “국가별 기준이 달라 이를 충족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예를 들어 비료, 농약, 설탕 등 생산 과정 전체를 유기농으로 해야 하는 올오가닉 기준은 제품의 맛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다.
BPDP 아디 국장은 소비자의 취향 차이도 문제로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은 단맛과 가벼운 질감을 선호는 반면, 국내 업체는 다크 초콜릿 생산에 집중하고 있어 수요 충당을 위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까덱 대표는 “유럽산 초콜릿은 명성이 높지만 원료는 유럽에서 자라지 않는다. 정작 인도네시아산 원료로 만든 제품도 유럽산이라는 이유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카카오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딴또 회장도 “해외 시장에서 인도네시아 제품이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품질 문제가 아니라 브랜딩과 시장 전략의 한계 때문”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정적 인식이 수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이를 개선하는 역할은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니투데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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