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20년’ 증언대회…
이주노동자들 착취•체불 등 호소
“일하다 다치면 죄인 취급…
남녀 노동자에 같은 방 주기도”
“사업장 변경 자유 줘야”…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 필요”
“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사장은 제게 월급을 반만 주고 일을 시켰고 일방적으로 해고했습니다. 난 잘못이 없는데도 불법체류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오히려 사장에게 잘못했다고 사정해야 했습니다”
캄보디아 출신 24살 팀 짠나가 18일 ‘고용허가제 20년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 나와 들려준 한국에서의 3년 3개월은 고난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농업 노동자로 입국한 짠나는 월세 15만원 2인 1실 숙소에서 왕복 90분 거리를 출퇴근하며 대전의 오이•상추 농가에서 일했다. 작황이 좋지 않자 월급이 2∼3개월 밀렸고, 짠나는 1년 1개월 만에 고용계약을 해지하고 일터를 옮겨야 했다.
구직시한 3개월이 끝나기 직전에 가까스로 구한 새 직장은 양평의 버섯공장이었다. 무거운 버섯판을 옮겨야 하는 고된 일에도 “할 수 있어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버텼지만 공장은 10개월 만에 폐업했다.
또다시 피 말리는 3개월의 구직 노력을 거친 뒤 작년 11월 금산 깻잎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장도 일 잘하는 짠나를 좋아했지만, 짠나의 3년 비자 만료 시기가 다가오자 사장은 근로계약서와 다르게 추가수당도 없이 일 10시간 근로를 강요했고, 막판엔 약속한 금액의 절반 정도인 110만원 남짓의 월급만 줬다.
비자 기간을 1년 10개월 더 연장하고 싶은 짠나는 묵묵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비자 만료 일주일 전 사장은 일방적으로 짠나를 해고했다.
일자리를 잃으면 곧바로 귀국해야 하는 데다, 고향의 아픈 엄마 치료비도 막막했던 짠나는 사장에게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호소해야 했다.
지원단체 등의 도움으로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것은 피했지만, 짠나는 “왜 잘못이 없는 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되고,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 사장은 저를 불법체류자로 만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올해 고용허가제 도입 20년을 맞아 민주노총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연 이날 증언대회엔 짠나 외에도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나와 자신이 겪은 피해 사례들을 공유했다.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의 비전문 일자리에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하는 제도로, 2004년 8월 처음 시행됐다.
고용허가제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최초 3년간 3회, 추가 1년 10개월간 2회에 한해 허용이 되는데, 이주노동자와 인권단체 등은 이같은 제한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비판한다.
올해 1월부터 경기도 이천의 한 건설 부품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 출신 찬드 바하두르는 무거운 것을 반복적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다 4월 허리를 다쳤다.
사장이 병원에 데려가 주지 않아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선 ‘요천추 염좌 및 긴장’ 진단과 함께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소견을 줬고, 찬드는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장은 찬드에게 “네팔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사업장 변경도 해주지 않았다.
찬드는 “일하다 아프거나 다치는 게 죄가 아닌데 사장은 나를 죄인 취급한다. 허리에 무리 가지 않는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있는데 사장은 본국으로 돌아가라고만 한다”며 “고용센터도 사장과 얘기하라고만 하고, 법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3번 가능하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면 사업주가 집중적으로 괴롭히거나 심지어 사업장 변경을 대가로 사업주가 돈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고 이주노조 등은 전했다.
인천 남동구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B씨는 고된 일을 하다 다쳐 사업장 변경 진정을 제출했다.
사업주는 다친 B씨가 일을 제대로 안 해 회사에 피해를 줬다며, 도입 경비와 기숙사 비용 등까지 2천만원을 변제한 후 이직하라는 각서를 내밀었다.
이밖에 농장에서 일하기로 계약한 이주노동자를 임의로 흑염소 식당에서 일하게 한 불법파견 사례,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남자 노동자와 한방을 쓰라고 한 사례, 한국인 관리자가 이주노동자를 쇠막대기로 폭행한 사례 등이 이날 증언대회에서 나왔다.
그런가 하면 대구의 한 식품회사 70대 사장은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귀엽다”, “한번 안아보자”며 갑자기 뒤에서 안거나 엉덩이를 손으로 꼬집는 등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금속노조 대구지부는 전했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사장에게 “회사를 옮기고 싶다”고 하자 “너희는 내가 돈을 주고 3년 계약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싶으면 너희 나라로 가라. 아니면 불법을 만들 거야”라고 협박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용허가제는 사업주 권리만 강화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이나 노동권은 박탈한 제도”라며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영어 구호를 입을 모아 외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