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인력’으로만 취급…
“외국인 노동자 없인 산업도 지역도 붕괴 현실”
외국인 노동자 체류기간 연장 등 추진…
“노동력 제공 이상의 역할”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었다.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지금,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 수와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필요한 최소한의 외국인 노동자만 입국시키고 일정 기간 후 돌려보내는 형태’의 현 제도는 더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2024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 중 취업자는 5월 기준 101만명으로 100만명을 처음 돌파했다.
외국인 노동자 양대 축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노동자 등 비전문 취업 비자(E-9) 소지자와 재외동포(F-4)•방문취업(H-2) 비자 소지자다.
지난 5월 기준 외국인 취업자 중 해당 비자 소지자 비중이 각각 29.9%(30만2천명)와 31.7%(32만명)였다.
내국인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합법적으로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해주는 고용허가제(E-9)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 6월 제도 시행 20년 만에 누적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국내에서 외국인 노동자, 특히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사는 이주민이라기보다는 내국인이 기피해 인력이 부족한 산업의 노동수요를 채우는 인력 정도로 여겨진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재외동포 취업 제한’이다.
재외동포는 원칙적으로 어느 분야에서나 취업할 수 있지만, 내국인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는 분야에선 법무부 고시에 따라 취업 활동이 제한된다. 재외동포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작년 5월부터다.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는 아예 9년 8개월이 최대 체류 기간이다.
처음 입국했을 때 최대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고, 이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6개월 뒤 재신청해 재입국하면 다시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다.
국내 정착은 안 된다는 기조에서 만들어진 단기 순환 원칙이다.
지난 6월 경기 화성시 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참사는 그간 외국인 노동자 정책이 일자리를 채우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참사를 계기로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E-9•H-2)는 입국 전후로 짧은 시간이나마 안전교육을 받지만, 재외동포는 교육 없이 산업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4년 전인 2020년 12월 20일 영하 20도 날씨에 난방시설이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외국인 노동자 속헹 씨가 숨진 일은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하는지 의문을 낳았다.
한국이 우위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골라 받는 시대는 곧 끝난다는 전망이 많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은 이제 농업과 제조업을 넘어 전 산업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농촌을 중심으로는 외국인 노동자가 빠지면 일터뿐 아니라 상권도 무너진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서울시가 지난 10월 마을버스 기사가 부족하다며 E-9 비자 발급 업종에 운수업을 추가하고 취업 활동 기간을 3년에서 5년에서 늘려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것은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운수업 E-9 비자 발급은 고용노동부가 반대해 당장은 실현이 어려워졌지만, 마을버스 인력난을 고려하면 언젠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대만 등 동아시아 전체가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를 겪고 있어 곧 외국인 노동자 확보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가 보다 길게 국내에서 일하게 하려는 방안이 나온다.
지난 6월 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일한 경우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외국인 노동자는 출국하지 않고 3년 단위로 취업 활동 기간을 연장하며 10년 넘게도 취업 활동을 할 수 있게 특례를 부여하는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고 현재 상임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일각에서는 일은 물론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쉬었음’ 인구가 240여만명에 달하는 취업난 속에 외국인 노동자를 늘리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도 한다.
다만 가장 문제가 되는 청년 쉬었음 인구 증가는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 부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아직은 외국인 노동자가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는 단계는 아닌 셈이다.
전문가들은 ‘노동력을 들여오면, 노동자가 온다’라는 명제를 강조한다.
유득규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 연구교수는 최근 한국주민자치학회의 ‘월간 공공정책’에 기고한 글에서 “농촌 이주노동자는 소멸지역에서 노동과 소비 활동을 하며 지역 고립과 소멸을 막고 있다”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