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점유율 0.4%서 1년새 3.4%로…
“전기차로 판도 바꾼다”
현대엔지니어링 4조원대 플랜트 공사…
日 싹쓸이하던 플랜트 첫 수주
“상대적으로 진출이 늦었지만 이제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타이밍에 접어들었습니다.”(현대자동차 이영택 아세안권역본부장)
2억8천만 인구를 보유한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에 주목한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며 시장 공략을 가속하고 있다.
그간 베트남 중심이던 아세안 시장을 다변화시키는 전환점으로 인도네시아를 점찍었다.
현대차는 아세안 지역 첫 완성차 생산공장을 준공했고, 현대엔지니어링은 5곳에서 초대형 정유공장 등을 짓고 있다.
우리 기업의 과제는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한 일본, 우리보다 먼저 진출한 중국 업체를 제치고 ‘판’을 뒤흔드는 것이다.
지난 16일과 18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끄는 ‘원팀코리아’ 수주지원단과 함께 인도네시아 현대차•현대엔지니어링 공장으로 향해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 노력을 들여다봤다.
현대차 “전기차로 분위기 바꾸겠다”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40km 떨어진 브카시에 아세안 지역 첫 완성차 생산 공장을 준공한 건 지난해 3월이다.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보닛에 사인한 전기차가 코나가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코위 대통령이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았을 때 서명한 차량을 옮겨다 놓았다.
이후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최초로 전기차(아이오닉5)를 양산하는 역사를 썼다.
가동 1년이 지난 차체 공장에선 로봇 400여대가 현란한 움직임으로 차체를 찍어냈다.
조립 공장에선 현지 전략 모델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크레타’를 현지 직원들이 분주하게 조립 중이었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은 90% 이상을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 스즈키 등 일본 자동차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차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영택 부사장(아세안 권역본부장)은 “인도네시아 시장은 중국보다 현대차가 3년 이상 늦게 진출했고, 내연기관차는 일본이 확실히 앞서 있다”며 “우리는 전기차로 분위기를 바꿔 시장 전체를 리딩하려 한다”고 말했다.
2021년 현대차 점유율은 0.4%에 그쳤지만, 공장을 완공한 지난해 3.4%로 늘었다.
현대차 옆에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합작한 전기차용 배터리셀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이 공장은 연 15만대 이상의 전기차에 들어갈 리튬이온배터리 셀 생산을 목표로 한다. 배터리 원료인 니켈 최대 보유국인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산업 허브’로 부상한다는 목표 아래 2019년 니켈 원광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내년 하반기 배터리셀 생산이 시작되면, 코나 전기차를 현지 생산해 현지화율(인도네시아 정부가 현지 생산 자동차로 인정하는 부품 비중)을 맞추고 아세안 국가로 수출한다는 전략이다.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 배터리를 장착한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 차량이 현대차 브랜드로 팔리는 것이다.
5조원대 정유공장 짓는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이 짓는 정유공장은 인도네시아 신수도 예정지와 90km가량 떨어진 칼리만탄섬 발릭파판에 있다.
인도네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르타미나’가 발주한 공사를 2019년 수주해 2025년 9월 완공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현대엔지니어링 한창구 현장소장(상무)은 “페르타미나가 발주한 공사는 일본 업체가 20∼30년간 계속해서 수주했는데, 국영 에너지기업 물량을 우리 기업이 처음으로 수주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계약 금액은 총 5조8천억원으로, 현대엔지니어링 몫이 4조1천억원(70%)이다.
‘아이칸(IKAN)’이라고 이름 붙은 건설 사업은 40년 가까이 돼 낡은 기존 정유공장을 개보수하면서, 새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다. 증류 공정 후 남은 중질유를 분해해 고부가가치의 LPG 휘발유, 경유를 생산하는 고도화설비(RFCC)를 만든다.
부지 면적은 축구 경기장의 400배인 300만㎡.
부지를 한 바퀴를 돌아 정유탑까지 가는 데만 차로 30분 이상이 걸렸다.
인도네시아는 석유 매장량이 세계 20위인 산유국이지만, 정유시설 부족으로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소비되는 석유 60%만 국내에서 조달된다.
발릭파판 정유공장이 완공되면 원유 정제 능력이 하루 26만 배럴에서 36만 배럴로 생산량이 확대된다.
페르타미나는 원유 정제능력을 현재 하루 100만 배럴에서 200만 배럴로 확충하기 위해 총 300억달러를 투입하는 ‘정유개발 마스터플랜'(RDMP•Refinery Development Master Plan)을 수립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새로 2곳의 정유공장을 짓는데 24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70조원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K팝 타고 형제국가로…”부족한 인력•자본 보완해줄 나라”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우리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 1위 국가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인 석탄,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게 경기에 호재가 됐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호기를 활용한 인프라 투자에 나섰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넘게 큰 비중을 점해온 중국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인도네시아를 핵심 국가로 본다는 것이 원 장관의 시각이다.
현대차 공장을 찾은 원희룡 장관은 “인도네시아를 단순히 자원의 획득 또는 상품의 진출 시장으로만 봐선 안 된다”며 “인구 2억8천만, 그중 절반 이상이 젊은이인 이 나라의 인적 자원을 발전시키면서 우리의 진정한 파트너이자 형제 국가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가 특히 K팝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공공사업주택부의 바수키 하디물요노 장관이 블랙핑크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농담처럼 몇 차례나 언급했을 정도다.
원 장관은 만나는 인도네시아 정부 인사들에게 나전칠기 등 기념품과 함께 BTS와 블랙핑크의 앨범을 선물했다.
원 장관은 “인도네시아는 무엇보다 제조업을, 미래산업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온 산업 일부를 함께 나눌 경우 우리의 부족한 인력•자본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나라”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