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이 형성되고 피아가 구분되자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측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조코 위도도 정부 연정에 참여하고 있던 나스뎀당이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카르타 주지사를 대선후보로 지명하자 벌어진 상황이다. 아니스는 10월 16일 막 주지사 임기를 마쳤다.
본질적으로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정당이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스뎀당은 왜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불이익을 당하는 것일까? 심지어10월 초 쏟아진 폭우로 자카르타 상당지역이 침수되며 홍수피해가 난 것에 대해 집권여당인 투쟁민주당(PDI-P)은 모든 것이 아니스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공격했지만 그 칼끝은 대체로 나스뎀당의 턱 밑을 향하고 있다.
공격의 논리는 연정에 참여한 정당이 연정 중심의 투쟁민주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뜻을 거슬려 제3의 인물을 임의로 대선후보로 추대한 것이 사실상 반역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스뎀당은 연정에서 물러나야 하며 나스뎀당 지분으로 배정되어 조니 G 플라테(Johnny G. Plate)가 맡고 있는 정보통신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것이 투쟁민주당의 주장이다.
나스뎀당이 정말 잘못한 것일까? 그런 투쟁민주당의 요구는 정당한 것일까?
물론 나스뎀당이 대선판 입장권을 얻기 위해 정당연합을 결성하려 접촉하는 곳들이 하필이면 야당인 복지정의당(PKS)과 민주당이란 것이 좀 애매해 보인다. 더욱이 야당들은 아직 나스뎀당의 손을 제대로 잡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구스 하리무르티 유도요노 (Agus Harimurti Yudhoyono) 민주당 대표를 아니스의 대선 러닝메이트로 삼는 구도에 연일 힘을 쏟고 있다. 메가와티의 장녀 뿌안 마하라니 국회의장을 내세워 대선 3연승 해트트릭을 달성하려는 투쟁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연정에 참여한 나스뎀당이 아직 조코위 대통령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지금, 야당들과 손잡는 것을 전제로 2024년 정권교체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 곱게 보일 리 없다.
하지만 투쟁민주당의 이러한 비난과 공격은 사실 비논리적 갑질에 가깝다. 2024년 대선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비단 아니스 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그린드라당 총재도 네 번째 대선 출마를 일찌감치 발표한 바 있다. 그 역시 연정에 참여한 국방장관이지만 누구도 그가 출마했다고 해서 조코위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비난하거나 그린드라당(Gerindra)을 연정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2024 대선에서 적군이 될 것이 분명한 아니스나 나스뎀당과 달리 프라보워와 그린드라당은 투쟁민주당의 아군이 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푸안(Puan maharani)이 마침내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nowo) 중부자바 주지사를 주저앉히고 자신이 후보가 되어 성공적인 대선을 치르려면 프라보워 등에 업혀 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니 프라보워의 대선출마선언을 투쟁민주당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투쟁민주당과 나스뎀당의 충돌로 운신의 폭이 가장 좁아진 것은 골카르당-국민수권당(PAN)-통합개발당(PPP)의 정당 연합인 통합인도네시아연대(KIB)다. 이미 대선판 입장요건을 갖춘 그들이 조만간 자체 대선후보를 내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임을 누구나 다 알지만 투쟁민주당이 아니스를 추대한 나스뎀당을 배신자로 몰자 KIB도 다음 행보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자칫 그들도 배신자로 몰릴 수 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KIB는 그린드라당과 투쟁민주당 조합인 프라보워-푸안 조합에 올라타느냐, 나스뎀과 아니스의 손을 잡느냐, 그것도 아니면 투쟁민주당이 배척하고 있는 강력한 대선후보 간자르 주지사를 어떤 식으로든 끌어들여 독자노선에 나서느냐 하는 세 갈래 길 앞에 서있다. 하지만 아니스나 간자르를 선택한다면 배신자 취급을 받을 판이다.
골카르당(Gokar)의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Airlangga Hartarto), 통합개발당의 수하르소 모노아르파(Suharso Monoarfa), 국민수권당의 줄키플리 하산(Zulkifli Hasan) 등 각 당 당대표들이 연정지분에 따라 각각 경제조정장관, 국가개발기획부 장관, 무역부 장관으로 입각한 상태다. 특히 가장 최근 야당에서 넘어와 연정에 참여한 국민수권당에 장관직이 배정된 것은 올해 6월의 일이다.
수하르소 장관은 최근 당권에서 밀려나는 내홍을 겪었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수권당과 통합개발당의 지지율은 2019년 총선 당시에 비해 오히려 하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후보를 추대해 정권의 배신자로 몰리면 2024년 총선에서 현재 의석을 방어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골카르당 정도가 겨우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국 선거 시즌이 다가오기 전 KIB 정당연합의 조기붕괴로 이어지는 길이 될 것이다.
투쟁민주당 하스토 크리스티얀토(Hasto Kristiyanto) 사무국장은 그 옛날 독립투사들이 네덜란드 국기에서 파란색 부분을 뜯어내듯 현재 연정에서도 파란색(나스뎀당 로고 색상)을 뜯어내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을 내놓았지만 나스뎀당은 2024년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연정에 머물며 현 정권을 충실히 보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당과 야당 사이 경계선에서 자체 대선후보를 가진 단일 정당이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나스뎀당 혼자 원한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아니스의 입장은 더욱 독특하고 선명하다.
그는 나스뎀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를 받았지만 입당은 면제받았다. 그 대신 부통령 후보 지명에 대한 전권을 넘겨받았다. 물론 다른 당들과의 제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부통령 후보 지명권은 다른 당과 조율해야 할 카드이므로 사실상 임의로 사용할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자카르타 주지사직을 마치면서 ‘2024 대선후보’라는 포지션에만 충실하면 되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국민들이 보기에 그 이상 선명할 수 없다. 그는 인지도와 지지율이 획기적으로 오르기 좋은 조건이 된 것이다.
조코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헤루 부디 하르토노(Heru Budi Hartono) 대통령실 사무처장을 자카르타 주지사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것 역시 아니스에겐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
헤루 직무대행은 기본적으로 조코위와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 사람이고 아니스는 아혹을 꺾고 주지사가 된 사람이다. 그런 민선 주지사 아니스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앞으로 2년간 지속될 공백기에 아니스의 위업을 뒤집어 엎고 조코위의 의지를 실현할 인물을 지명한 것은 일견 아니스 지우기 같기도 하고 전국 지자체들을 이번 기회에 정부가 완전히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위기는 기회다. 아니스는 그런 정부의 반대편에 서서 응분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이다.
인니투데이ㅣ배동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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