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티니 쿠퍼(Muntini Cooper)씨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이 정도면 우리가 법적으로 부부라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2003년 문티니씨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호주 광산회사에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1년 후 결혼했다.
발리파판으로 이주하기 전 그들은 뜨렝갈렉(Trenggalek)에서 8년을 살았다. 당시 이웃들은 그녀를 외국인과 위장 결혼한 이주 노동자쯤으로 여겼다. 집을 새로 짓고 있을 때 사람들은 집이 완성되기 전 그녀의 남편이 떠날 것이라고 수군거리곤 했다.
결혼 5년차에 그녀는 쌍둥이 딸을 낳았다. 하얀 피부에 분홍색 뺨, 연한 금발 머리의 사랑스러운 아기들이었다.
하지만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 그녀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로 또 한번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엄마가 아닌 유모로 보기 일쑤였고, 아빠가 백인이라 아이들이 예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을 만나는게 두려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집에 있는 것만이)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그녀는 당시를 회상했다.
낙인이 찍힌다.
호주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야니 라우워이(Yani Lauwoi)씨는 호주인 남편 섀넌 스미스(Shannon Smith)와 결혼했을 때 ‘백인 킬러’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충분한 경제력이 있는 전문직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남편에 의존해 살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사람들은 호주인과 결혼한 인도네시아 여성을 열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한다”며 “백인 남성과의 연애를 두고 불순한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랑보다는 팔자를 고치려는 여자로 낙인이 찍힌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편견에 지친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 결심했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국제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아 가보자는 취지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야니씨는 “방송을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청취자 수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10개국에서 우리 방송을 듣고 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청취자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도네시아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오랫동안 있어 왔다. 국제결혼 협회 ‘퍼르까위난 짬뿌란 인도네시아(Perkawinan Campuran Indonesia, 이하 PerCa)’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 기여해왔다.
이 단체는 국제결혼을 한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커뮤니티로 2008년 설립 당시 46명이었던 회원수는 현재 1,500명에 이른다. PerCa는 지난 14년간 국제결혼을 옹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PerCa의 공동 설립자인 멜바 나바반 술리반(Melva Nababan Sullivan)씨는 “사회적 통념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국제결혼 사례가 늘면서 이것이 인도네시아의 사회 담론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가자마다대학(Gadjah Mada University) 율리다 빵아스뚜띠(Yulida Pangastuti) 교수는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이 식민지 시대 형성된 가치론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율리다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식민지 시대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실제로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백인 남성들을 상대했다. 그녀들에게 외국인 남성, 특히 백인 남성은 정치적 경제적 야망을 실현해 줄 권력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야니 라우워이가 팟캐스트를 통해 국제결혼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제결혼 가정의 권리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를 청취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결혼에 관한 담론은 부부간의 문화차이, 중산층 이상의 교제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실제 국제결혼 커플 중 하위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종종 간과되곤 한다.
율리다 교수는 “예를 들어 많은 인도네시아 이주자들끼리 결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와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커플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출생증명서가 없는 경우도 많아 사회지원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중산층 미만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민국의 수속절차와 요건들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성별과 인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국제결혼을 얘기할 때 인도네시아 남성을 반드시 포함시키는데 그들이 다른 인종의 여성과 결혼한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낙인 그 너머
인도네시아의 국제결혼 가정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PerCa의 설립자 중 한명인 멜바 나바반 설리반(Melva Nababan Sullivan)씨는 PerCa가 거주 허가, 시민권, 재산 소유권 등의 국제결혼 가정이 직면해야 하는 법적 문제에 있어서 이들을 대변해 투쟁해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시민에게 외국인 배우자의 거주 비자를 후원할 수 있는 권리나 이들의 자녀가 18세가 되었을 때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부여 등이 그것이다.
멜바는 “인도네시아 국민이 외국인과 결혼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비단 문화차이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종교 등을 통해서도 나타난다”며 “맞춰가고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현재 호주 퍼스(Perth)에 살고 있는 문티니 쿠퍼도 이 말에 동의했다.
인니투데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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