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4일 무라디 이스마일(Muradi Ismail) 말루꾸 주지사는 암본(Kota Ambon) 시장, 부루(Kab.Buru) 군수, 스람 서군(Kab. Seram Barat) 군수, 띠님바르 제도(Kepulauan Tanimbar) 군수 네 명의 직무대행을 임명했다.
이들 중 스람서군 군수 직무대행으로 임명된 안디 찬드라 아사두딘(Andi Chandra As’aduddin)은 현역 육군준장이자 국가정보국 중부 술라웨시 지부장이어서 현역 군인의 공직겸직금지조항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모두 내무장관의 승인을 받은 인사였다.
얼마 후인 7월 6일 이번엔 아쩨주 주지사 직무대행으로 아흐마드 마르주키(Achmad Marzuki)가 임명되었다. 지역군사령관과 육군 요직을 역임한 그는 취임 당시 현역군인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2022년 3월에 전역한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민간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현역 또는 막 전역한 장성들이 전국 지방자체단체장 직무대행으로 속속 임명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인도네시아 정부나 사회가, 군인들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믿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 대통령 비서실장 물도꼬나 최근 입각한 하디 짜햔토(Hadi Tjahjanto) 국토부장관은 인도네시아 통합군사령관 출신이고 대통령 오른팔 루훗 빈사르 판자이탄(Luhut Binsar Panjaitan) 해양투자조정부 장관도 육군 4성 장군, 프라보워 수비얀토(Prabowo Subianto) 국방장관도 육군전략사령관을 역임한 3성 장군 출신이다. 심지어 전 종교부 장관 파크릴 라지(Fachril Razi)도 4성 장군인 통합군 부사령관, 전 보건부 장관 뜨라완 아구스 뿌뜨란토(Terawan Agus Putranto)도 3성 장군 군의관 출신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군 장성들이 입각하거나 영전하는 것보다 더욱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전국 지자체장들이 속속 직무대행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점 자체다.
현 지자체장들에게 재임 중 유고사항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임기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지방선거를 통해 후임자가 선출되어 전임자 임기만료와 동시에 새 지자체장이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인도네시아는 이상한 선택을 했다. 모든 지자체장들의 임기가 끝나고 6개월~2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인 2024년 11월 27일에 지방선거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2024년 2월 24일에는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데 이때 선출되는 대통령이 그해 10월에 취임하는 것을 감안하면 2024년 11월의 지방선거 후에도 지자체장들의 실제 취임은 2025년 상반기 후반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하는 지명직들이 선출직 지자체장 자리를 대신 맡아 지방정부들을 움직이게 된 것이다. 전시도 아닌데 동남아 최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정상적이지도 않고 민주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월 16일에는 5년간 자카르타 시정을 맡았던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자카르타 주지사가 퇴임하고 헤루 부디 하르토노 (Heru Budi Hartono) 대통령실 사무처장이 17일 직무대행에 취임했다.
앞서 말루꾸와 아쩨는 5월과 7월이었는데 자카르타 주지사 임기는 왜 10월까지냐며 무슨 지자체장들 임기가 각각 들쭉날쭉한가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인도네시아 지방선거에는 그런 복마전이 숨어있다. 유력한 대선후보인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nowo) 중부자바 주지사와 리드완 까밀(Ridwan Kamil) 서부자바 주지사 등의 임기는 아직도 11개월쯤 후인 2023년 9월에 끝난다.
주지사쯤 되면 직무대행이라 해도 내무장관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복수의 이름을 올려 대통령이 선택하는 방식이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스리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Sri Sultan Hamengku Buwono X)는 10월 10일 족자카르타 주지사로 재취임했다. 일곱 번째 연임이다. 아무리 중앙정부라 해도 족자 신민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추앙을 받는 왕국의 술탄을 무작정 뒷방으로 밀어내고 자기 사람으로 직무대행을 꽃을 수 없었으리라.
지자체장 직무대행 시대의 문제는 상당기간 주정부와 시군의 행정을 이끌 사람들이 ‘국민들이 집단지성을 모아 선택한 당선인’이 아니라 ‘정부와 집권여당이 일방적으로 지명한 인물’이므로 전임 선출직 지자체장의 업적과 정책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에 유리한 정파적 이해득실이 필연적으로 반영될 것이란 점이다.
헤루 자카르타 주지사 직무대행은 그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아니스 전 주지사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 부지사로서 이후 주지사 직을 승계한 아혹을 2017년 지방선거에서 누르고 지난 5년간 자카르타 행정을 도맡았다. 치열했던 코로나 방역, 팬데믹 기간 중 완공한 자카르타 국제경기장(JIS), 자카르타 교통시스템 통합, 포뮬러 E 전기자동차 경기대회 유치 등이 그의 재임기간 중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아니스는 그린드라당, 나스뎀당 등은 물론 지금은 불법단체로 지정되어 해체된 이슬람수호전선(FPI)을 포함한 강성 이슬람단체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에게 패한 아혹은 지방선거 중 불거진 신성모독 논란으로 재판을 거쳐 투옥되며 거의 패가망신 상황까지 갔다. 최근 아니스는 퇴임 며칠 전엔 나스뎀당에 의해 2024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현 정권과 집권여당의 대척점에 선 것이다. 정권 입장에서 그에게 미운털이 박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헤루 직무대행은 기본적으로 조코위와 아혹의 사람이다. 2017년 지방선거에 거의 아혹의 러닝메이트가 될 뻔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는 아혹이 선거에서 패한 후 2017년 7월부터 대통령실 사무처장으로 발탁되어 지금까지 일하다가 이번에 자카르타 주지사 직무대행으로 지명된 것이다.
더욱 특이한 점은 그가 대통령실 사무처장 직책을 여전히 겸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야당 출신 서울시장 임기가 만료되었는데 전임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이 시장선거를 2년 후로 미루고 그사이 대통령 부속실장을 일방적으로 시장 직무대행으로 겸임시킨 것에 다름아니다. 헤루가 전임 아니스의 정책을 승계할지, 자카르타 주정부가 앞으로 대통령실 직할로 기능하며 철저히 중앙정부 정책을 반영할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선출직 지자체장을 뽑은 지역주민들의 민의를 좀 더 중히 생각했다면, 정말 지방선거를 당장 치를 상황이 되지 않더라도 최악의 경우엔 기존 선출된 지자체장의 임기를 그만큼 연장하고 지방의회와 중앙정부의 추인을 받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대신 그간 이상한 화두가 사회를 휩쓸었다. 2024 대선일정을 연기하거나 조코위 대통령 임기를 2년쯤 연장해야 한다는 국회발 제안이 올해 상반기 국가 전체를 들끓게 했다. ‘신수도 이전’이란 국가적 초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상황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니 2024 대선과 총선을 2년 연기해 통합하여 예산도 아끼고 조코위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임기를 그만큼 연장하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몇 개월씩 진영을 나누어 공방을 벌인 것이다.
그 논란은 당연하게도 현행 헌법과 선거법을 준수하고 선관위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 날짜에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것으로 귀결되었지만 그것은 공교롭게도 2월의 대선과 총선뿐 아니라 11월의 지방선거까지 그렇게 결정된 날짜에 치르는 것으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셈이 되어버렸다.
선거연기와 대통령 임기연장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애당초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사실 이런 결과 아니었을까? 어쩌면 정부와 여당은 2024년 모든 지방권력들이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중앙정부가 원하는 바에 일사분란하게 보조를 맞추는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를 치르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며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인니투데이ㅣ배동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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