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자카르타포스트의 사설은 첫 인도 혈통 힌두교도 총리가 나온 영국에 대한 부러움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영국엔 기독교인 찰스 3세 국왕, 힌두교도 수낙 총리, 유대교도인 그랜드 셉스 내무장관, 무슬림인 사딕 칸 런던 시장이 공존하고 있다. 빤짜실라 이념과 비네카 뚱갈 이카(Bhineka Tunggal Ika) 사상이 인도네시아가 아닌 영국에서 구현되고 있다.’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건국이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는 종족과 종교에 따라 여러나라로 나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빤짜실라 사상이 이슬람 유일신에 대한 신앙만 강조했다면 힌두교의 발리나 토착신앙의 파푸아, 기독교세가 강한 수마트라의 바딱 지역, 술라웨시 북부의 미나하사, 동인도네시아의 말루꾸 같은 곳들은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합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든 종족과 종교를 품기 위해 국가이념에 이슬람을 강제하지 않기로 결단했고 그 결과 인도네시아가 헌법상 세속국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무슬림이면서도 다른 종교들과의 공존이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외의 다른 종교들이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당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과거 아혹(Ahok) 전 자카르타 주지사가 아니스 바스웨단에게 선거에서 진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중국계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쉽게 신성모독 프레임에 빠져 무슬림들의 지지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개인 레벨에서도 당장 이종교간 결혼을 현지 종교부가 전통적으로 용인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녹녹치 않다. 종교의 자유를 헌법이 보장하면서도 정부 차원에서는 부부가 서로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어느 일방의 개종을 강요하는 것인데 과거 현지인과 결혼하려는 외국인들은 형식적으로나마 대부분 이슬람 입교절차를 밟았다.
그것은 국가 지도자에게도 적용된다. 종교의 자유가 있건 말건 대통령은 무조건 무슬림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예의 자카르타포스트 사설은 영연방국가의 하나인 인도가 힌두국가이면서도 무슬림인 압둘 칼람(Abdul Kalam)이 11대 대통령(2004~2007)을 역임했고 그가 임명한 시크교도 만모한 싱(Manmohan Singh)이 13대 총리(2004-2014년)를 지낸 점을 조명했다. 소수 종교를 믿는 사람이 인도의 행정부 수반이 된 것은 오히려 영국보다 빨랐다. 인도네시아에선 아직 전례가 없다.
여성과 비자바인
인도네시아의 국가 지도자 표준은 전통적으로 자바인 무슬림 남성이었다. 그래서 메가와티(Megawati Soekarnoputri)를 제외한 모든 대통령들과 부통령들은 표준 사진 속에서 무슬림 남성을 상징하는 꼬삐아(Kopiah) 모자를 쓰고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BJ 하비비(1998.5~1999.10) 대통령은 자바와 술라웨시 고론탈로 혼혈이었다. 그는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지명직 부통령이었다가 1998년 5월 민주화시위와 자카르타 폭동으로 수하르토가 하야하자 그 자리를 승계하여 다음 대선을 앞당겨 치르기까지 517일 간의 짧은 임기를 마쳤다.
메가와티 역시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이하 ‘구스 두르’)이 탄핵되자 역시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해 잔여임기를 지냈고 재선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국부(國父)로 추앙되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장녀였지만 여성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비슷한 국민자문의회(MPR)에서 1999년 10월 20일 있었던 대통령 간접선거가 TV를 통해 중계되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초반에 크게 앞서 나가던 메가와티가 개표 후반에 구스 두르에게 드라마틱하게 뒤집히자 투쟁민주당(PDI-P) 지지자들이 이에 불복해 그날 저녁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스망기 톨게이트를 불태우며 소요와 폭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다음날, 메가와티가 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급한 봉합이 이루어졌다.
이미 많은 여성들이 정부 내각이나 국회, 지자체에 장관이나 의원, 단체장, 기관장 등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2024 대선을 위해 어머니이자 당총재 메가와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는 푸안 마하라니 역시 여성이란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간자르 프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를 어떻게든 주저 앉히고 그녀를 대선후보로 추대하려는 당내외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지난 8월 독립기념일 이후 다른 정파 인사들을 예방하며 매체들의 주목을 끄는 이른바 ‘정치적 사파리’를 강행하면서도 그녀의 당선가능성이 여전히 1% 대에서 맴도는 것은 대통령직만은 여성에게 줄 수 없다는 국민들의 전통적, 가부장적 거부감 때문일 수 있다.
수마트라 부낏띵기 출신의 모하마드 하타(Mohammad Hatta) 초대 부통령이나 유도요도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 초선 임기에 두 차례나 부통령을 했던 남부 술라웨시 마카사르 출신 유숩 칼라(Jusuf Kalla)의 경우에서 보듯 부통령에 대해서는 자바인이란 특정 종족을 지나치게 고집하진 않는 눈치다. 오히려 전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대선에서 각계 각층의 표를 모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비자바인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영입하는 것은 사뭇 영리한 전략적 선택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후 1950년대에 벌어진 지역반란 대부분은 자바인 중심의 중앙정부가 지방을 홀대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는데 자바인이 아닌 모하마드 하타 부통령의 존재가 당시 매우 상징적이었다. 심지어 1958년 자카르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수마트라의 PRRI(인도네시아 공화국 혁명정부) 반란, 술라웨시의 뻐르메스타 반란의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가 1956년 12월 사퇴한 모하마드 하타의 부통령 복귀이기도 했다. 부통령이 직접 나서 자바섬 이외 지역의 이익을 강력히 대변해 주는 것은 모든 비자바인들이 바라마지 않는 바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19년 대선 당시 프라보워가 자카르타 부지사 산디아가 우노(Sandiaga Uno)를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인 것 역시 젊고 참신한 청년 사업가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 외에도 그가 BJ 하비비와 같은 자바-고론탈로 혈통으로 수마트라 뻐깐바루(Pekanbaru)에서 태어났다는 비자바인 스펙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재 2024 대선 당선 가능성 상위권을 이루는 세 명의 후보들, 즉 프라보워 수비얀토 국방장관, 간자르 프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카르타 주지사는 모두 자바인 무슬림 남성이란 대통령 표준 모델에 정확히 부합한다. 전통적으로 이 표준모델이 늘 먹혔다는 건 대통령 후보라면 모름지기 다수집단, 권력집단을 대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굳이 대놓고 말하진 못해도 인도네시아 전체의 반이 넘는 1억5,000만 명가량 인구를 보유한 자바에서 대통령이 계속 배출되는 것은 현재의 인구 구조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바인들로서는 인도네시아의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 자바 문화를 체화한 자바인 지도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끄자웬과 무샤와라
그건 아마도 끄자웬(Kejawen) 문화 영향인 것 같은데 논문 수십 편으로 설명해도 모자랄 끄자웬을 한 마디로 지나치게 일반화해 말하자면 ‘가식적, 표면적인 평화와 포용의 추구’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서로 다른 단체나 정파들이 무샤와라(Musyawarah)라는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끄자웬의 위력은 독립전쟁 당시 자바-수마트라 일부를 지배하던 수카르노 정부를 상대로 네덜란드 편에 서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며 반목했던 인도네시아의 나머지 대부분 지역들이 독립 후 수카르노와 손잡고 한 나라가 된 것, 마타람 왕국과 그 후예인 족자 술탄국, 수라카르타 수난국이 유일신을 섬기는 이슬람 왕국임에도 불구하고 자바 남쪽바다 용왕 격인 마물들의 여왕 니로로키둘(Nyi Rorokidul)을 왕실의 수호자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끄자웬의 본질은 그렇게 완전히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융합하는 것에 있다. 그러니 2024 대선을 앞두고 목표와 신념이 각각 다른 정당들이 이합집산하며 정당연합을 만드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빤짜실라 사상과 ‘다양성 속의 통일’이란 국가 모토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래서 자바인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즉 BJ 하비비 재임시절, 동티모르가 독립해 떨어져 나간 것을 그가 끄자웬 문화를 체득하지 못한 비자바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한편 푸안에겐 여성이란 점 외에도 위의 표준 모델을 살짝 벗어날지도 모를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수카르노의 어머니, 즉 푸안의 모친 쪽 증조 할머니는 발리의 브라만 계급 힌두교도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여동생, 푸안에겐 이모가 되는 수카르노의 셋째 딸 수크마와티 수카르노뿌뜨리(Sukmawati Soekarnoputr)가 2021년 10월 공식적으로 힌두교로 개종하는 정화의식을 치렀다. 그것은 비록 푸안이 무슬림이라 해도 그녀의 집안엔 힌두의 전통이 어떤 식으로든 깊이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투쟁민주당의 엘리트들과 대다수 지지자들은 그 부분을 못본 척하고 있다.
인니투데이ㅣ배동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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