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간의 긴 논의 끝에 인도네시아 정부, 하원, 선거관리위원회(KPU)는 2024년 2월 14일 총선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조코위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선 연기와 대통령 임기 연장 문제로 각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총선 일정이 확정됨으로써 대통령 3선 담론은 자연히 사그라들었지만, 최근 이 쓸모없는 이슈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착 이민(Cak Imin)이란 별칭을 가진 국민각성당(PKB) 무하이민 이스칸다르(Muhaimin Iskandar) 당대표가 총선 연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경제가 아직 불안정한 상태고,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선거 연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빅데이터 기반의 SNS 분석에 따르면 1억 개의 SNS 계정 중 60%가 선거 연기에 동의했다.
26일 착 이민은 서부자바 국민계몽당 행사 연설에서 “빅 데이터는 의사 결정의 중요 지표가 된다. 이전까지 설문 조사를 통해 여론을 파악했다면, 지금은 빅 데이터 시대다”라고 말했다.(Kompas.com)
착 이민 외에도 국민수권당(PAN) 줄키플리 하산(Zulkifli Hasan) 대표도 같은 논리를 펼쳤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그는 “팬데믹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경제 성장은 3~3.5%에 머물러 있고 실직자는 넘쳐 난다. 기업의 상황도 여전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liputan6.com)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명분으로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인도네시아 총선은 5년에 한 번 실시된다. 과연 경제 회복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인도네시아에 존재할까?
인도네시아 헌법에는 비상사태 시 총선을 연기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비상사태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있나? 그렇지 않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일반 법률의 관점에서 코로나 19 전염병을 규정해 정책을 발표했다. 따라서 경기 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선거를 연기하는 것은 위헌이다. 국민 여론을 들어 선거 연기를 주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총선 연기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낳는다. 선거를 연기하는 기간 만큼 대통령•부통령 자리는 공석이 된다. 인도네시아 헌법에 대통령•부통령직을 채우는 조항이 존재하긴 하나 이는 탄핵의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또한 대선 연기는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한 1945년 인도네시아 공화국 헌법 제7조에 저촉된다.
결국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늘리지 않는 이상 선거 연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사실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착 이민(Cak Imin)은 왜 선거 연기를 주장하는 것일까. 이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쇼’라고 볼 수 있다. 착 이민은 2024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설문조사에서도 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선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빅데이터를 운운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것, 법률상 실현 불가능한 아젠다를 끌고 오는 것 모두 다분히 구시대적 유물 정치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선거 연기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Indikator Politik Indonesia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만 봐도 응답자의 67.2%가 팬데믹임에도 불구하고 2024년 총선이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에서 선거 연기에 동의한 응답자는 전체의 24.5%에 불과했다.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만족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선거 연기 담론과는 무관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도 동시선거(총선/대선)를 치룬 인도네시아다. 당시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선거를 그대로 밀어부쳤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의 몇몇 정치인과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거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팬데믹을 이유로 선거 연기를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법적 불확실성을 부추길 뿐이다.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만약 2027년으로 총선을 연기했음에도 여전히 팬데믹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불확실성을 높이고 인도네시아 정부를 더욱 권위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인니투데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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