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헌 판결 직접 참여로
조카의 부통령 출마길 열어
위헌 결정은 유지…
소장직만 물러나고 헌법재판관 신분도 지속
선거법 위헌 결정을 내려 자기 조카인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 장남의 부통령 ‘출마 우회로’를 만들어 준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장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8일(현지시간) 일간 콤파스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헌재 윤리위원회는 전날 회의를 열어 안와르 우스만 헌재 소장이 자기 조카와 관련된 선거법 위헌 심판 결정에 참여한 것은 이해 상충에 해당한다며 헌재 소장직을 박탈하고, 선거 관련 위헌 심판에 불참하도록 명령했다.
윤리위는 “안와르가 스스로 사건을 기피하지 않아 판사의 윤리 강령 특히 중립성과 공정성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어 헌재 부소장에게 새로운 헌재 소장을 선출하기 위한 회의를 열 것을 명령했다.
다만 윤리위는 헌재 소장직만 박탈하고, 총 9명 중 한명인 헌법 재판관으로의 신분은 계속 유지하도록 했다.
또 그가 위헌 결정을 내렸던 선거법에 대한 판단도 그대로 유지됐다. 윤리위는 법관의 윤리 위반을 조사할 권한만 있고 헌재 심판의 유효성을 결정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에도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부통령 후보는 현 대선 레이스에서 밀려나지 않게 됐다.
지난달 16일 인도네시아 헌재는 대통령과 부통령의 피선거권 연령을 40세 이상으로 제한한 선거법이 위헌이라며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됐던 사람은 연령 제한을 적용받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 소원을 5대4로 받아들였다. 이어 의회도 헌재 결정에 따라 선거법을 개정했다.
이 덕분에 36세인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 기브란 수라카르타 시장은 대선 출마 자격을 얻게 됐고, 현재 차기 대통령 지지율 1위이자 현 국방부 장관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그린드라당 총재는 기브란 시장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하지만 헌재 결정 과정에서 기브란 시장의 고모부인 안와르 소장이 사건을 기피하지 않고 심리에 직접 관여해 문제가 됐다. 이해충돌 문제가 있는 자기 조카와 관련된 사건에 참여했고 조카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대규모 시위를 열었고, 안와르 소장이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헌재에 제소해 윤리위가 열리게 됐다.
프라보워 총재의 경쟁자인 간자르 프라노워 후보 측은 윤리위의 결정을 환영하며 “헌재가 진정으로 헌법을 수호하고 정직하며 공정한 선거를 보장하고자 하는 희망의 수호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프라보워 후보 측도 이번 결정에도 기브란이 계속 부통령 후보로 뛸 수 있게 된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윤리위의 이번 결정은 정치적 타협이라며 선거법 위헌 심판을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헌재에는 새로운 선거법이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청구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욕야카르타 가자마다대학교의 얀스 애리조나 헌법학 교수는 윤리위가 안와르 소장을 헌법 재판관직에서도 해임했어야 한다며 “윤리위가 법원의 규정에 명시된 최대치의 징계를 내리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