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잉, 합의금 내고 형사 책임 면제…
유족 “정의 아니다” 울분
7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라이온에어 여객기 추락 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의 유족이 최근 미국 당국과 사고 여객기 제조사인 보잉의 잠정 합의 소식을 듣고 반발했다.
미국 법무부는 보잉이 안전 개선 비용과 유족 배상금으로 약 15억 달러(약 2조600억원)를 내는 대신 형사 책임을 면제해주기로 하자 유족들은 이번 합의가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8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검찰은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라이온에어 여객기 추락 사고와 관련해 보잉을 기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시받은 잠정 합의 문서를 최근 법원에 제출했다.
합의 내용에는 보잉이 11억 달러(약 1조5천100억원)를 안전 개선비로, 4억4천500만 달러(약 5천500억원)를 유족 배상금으로 내는 대신 형사 재판은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SCMP는 전했다.
보잉은 당시 사고 기종인 ‘737맥스’의 결함을 미국 당국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국 법무부는 “(사고로 인한) 희생은 결코 보상받을 수 없지만, 이번 합의로 보잉에 재정적 책임을 묻는다”며 “피해 가족에게는 보상을 주고 향후 항공 안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유족들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재정적 처벌을 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당시 사고로 아내의 사촌 2명을 잃은 안톤 사하디는 SCMP에 “미국 법무부의 이번 합의는 대기업이 벌금만 내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23살 딸을 잃은 누에이스 마르푸아도 보잉이 형사 처벌을 받길 바랐다며 “개인적으로 보잉에 매우 실망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보잉은 이미 2021년 25억 달러(약 3조4천400억원)를 내면 기소하지 않기로 미국 법무부와 합의했으나 이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앨빈 리 인도네시아 항공 서비스 이용자 협회장은 “보잉 고위 경영진들이 시스템에 관해 정부에 정직하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오래전부터 의심받았다”며 “책임은 회사 전체가 아닌 경영진 개인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잉의 주장을 몇 년간 비판 없이 수용한 미국 연방항공청(FAA)에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이자 변호사인 미셸 파라디는 “미국 법무부는 기업이든 일반인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형사 사건을 합의하는 재량권을 갖고 있다”며 “5억달러가량이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는 게 사건을 더 끌고 가는 것보다 빠르고 공정한 해결책이라고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하디는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돈으로 보상할 수 없다며 “법적 시스템이 기업의 인명 피해 행위에 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현지 저비용항공사 라이온에어 소속 보잉 737맥스가 이륙 직후 바다로 추락해 탑승객 189명이 모두 숨졌고, 5개월 뒤 에티오피아에서도 같은 기종이 이륙 후 6분 만에 추락해 157명 전원이 사망했다.
두 사고 모두 항공기의 자동 비행 안정화 기능인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이 오작동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