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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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만사] 정부와 이슬람의 충돌과 상생

이슬람옹호전선(FPI)의 하빕 리직 시하브(Habib Muhammad Rizieq Syihab) 대표가 시위를 지휘하고 있다 / 사진 : 트리뷴 뉴스

1945년 일본군이 지원한 동인도의 독립준비조사국(BPUPKI)이 초안한 ‘빤짜실라(Pancasilla)’의 5가지 건국이념이 ‘자카르타헌장(Piagam Jakarta)’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첫 번째 조항이 이랬다.

‘유일신에 대한 신앙과 샤리아법에 입각한 무슬림들의 의무’

이 조항을 건국이념으로 유지하느냐가 당시 중요한 쟁점이었다. 독립준비위원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무슬림들이 인도네시아 건국이념에 자신들 종교의 색체를 짙게 칠하고 싶었던 열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힌두교의 발리, 기독교의 메단, 북부 술라웨시, 암본 등과 토착신앙이 맹위를 떨치던 파푸아, 깔리만탄처럼 이슬람 색체가 옅거나 거의 사라진 지역들이 굳이 신생 이슬람국가에 편입하려 들지 않으리란 점 또한 명백했다. 빤짜실라 이념이 샤리아법을 앞세운다면 첫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고작 자바와 수마트라 중남부 정도를 아우르는 동남아의 작은 국가로 태어나게 될 터였다.

결국 이슬람 세력의 양보를 얻어낸 것은 공화국 첫 부통령으로 추대된 모하마드 하타였다. 그는 울라마들을 설득해 마침내 이슬람 색체를 지우고 위의 문장을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란 문구로 축소하는 양보를 얻어내면서 역내 비이슬람 지역들을 인도네시아 국경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가 엠블렘에 등장하는 독수리가 양발로 움켜쥔 휘장에 “Bhineka Tunggal Ika’라고 쓰인 산스크리트어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뜻한다. 그 ‘다양성’이란 종교의 차이는 물론 언어, 지역, 족속, 혈통, 문화, 빈부 차이 극복과 치열한 독립전쟁 당시의 진영 차이조차 초월해 최고선(最高善)인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빤짜실라 건국이념의 포용정신은 훗날 인도네시아가 6대 종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발휘된다. ‘유일신에 대한 신앙’에 입각해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를 받아들인 건 지당한 일이었지만 불교, 힌두교 같은 다신교, 화교들의 위상을 감안해 정말 종교가 맞긴 한가 싶은 유교까지 모른 척 수용한 것이다. ‘다양성 속의 통일’이란 개념을 인도네시아 정부가 어떻게 운용하는지, 그 실체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다양성 속의 통일’이란 자바의 생활철학 ‘끄자웬’(kejawen)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끄자웬을 아주 간략히 단순화하자면 ‘가식적인 평화의 추구’가 핵심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조차 서로의 안전과 체면을 위해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샤와라 (Musyawarah)라는 만장일치가 가능하다. 물론 만장일치를 의결한 각 구성원들이 집에 돌아간 후에도 그 합의를 성실히 지키느냐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빤짜실라 이념 아래에서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공존은 수하르토 시대까지도 그리 별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말 수하르토 시대가 저물고 이슬람이 서구문명에 대한 무슬림들의 자부심이 되면서 이슬람이 부흥했고 그것은 1999년 비록 국민자문의회(MPR)을 통한 간접선거이긴 했으나 인니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울라마 총회장 출신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제4대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때 정점을 찍었다.

인도네시아인들에겐 전통적으로 ‘이슬람은 민족주의’라는 인식이 강했고 밀레니엄 초입에 벌어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이 시작되자 ‘이슬람은 애국주의이자 사해동포주의’라는 이미지마저 띄었다.

그래서 이슬람을 기치로 내건 개인이나 단체가 불법을 저질러도 감히 단속하지 않는 분위기도 역력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매년 라마단 금식월이 되면 군복 비슷한 유니폼을 맞춰 입고서 오토바이로 떼를 지어 정부 시책에 반해 문을 열고 있던 술집, 당구장, 카라오케 등을 임의로 단속하며 때로는 기물을 파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점주를 협박해 돈을 뜯는다는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니며 오랫동안 악명을 떨친 이슬람수호전선, FPI였다.

대체로 이슬람이 사회와 정치보다 사실상 상위에 있던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나들라툴울라마, 무함마디야,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위원회(MUI) 같은 대형 이슬람 단체들이 정부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크게 이슈가 되고 급기야 2019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전국 무슬림 표를 노리고 1차 임기 부통령이었던 유숩 깔라 대신 NU 총회장 출신 마루프 아민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영입했다. 그 전략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러다가 2020년 인도네시아에 코로나가 상륙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정부가 방역 프로토콜이란 무기를 쥐고서 무슬림 단체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예를 두 가지쯤 든다면 우선 그 중 하나는 학교가 임의로 여학생들에게 히잡을 쓰도록 강요한 것을 교육문화부가 나서 전격 금지하여 이슬람을 빙자한 학교 측의 과도한 개인권리침해행위를 중단시킨 것이다.

그리도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FPI를 2020년 말에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강제해산시킨 일이었다. 당시FPI 수장 리직시합의 과도한 도발과 수 차례에 걸쳐 코로나 보건 프로토콜을 위반하며 조코위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있었는데 경찰이 체포를 시도하자 당시 까라왕 톨을 달리던 리직시합의 경호원들이 저항하며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FPI 측 여섯 명 사망. 리직시합은 나중에 체포되어 이 일이 아닌 보건 프로토콜 위반혐의로 실형을 살았고 10년 넘는 세월동안 인도네시아 사회에 수많은 물의를 빚은 FPI가 마침내 철퇴를 맞아 공식 해산되고 말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전국 단위 이슬람 조직 하나를 공중분해 시킬 정도로 정부의 힘이 커진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의 끝이 보이고 저 멀리 아직도 아득해 보이는 2024년 선거들을 위한 준비가 일찌감치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와 이슬람의 힘겨루기는 다른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정부의 히잡 착용 강요금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학교가 여기저기 등장하기 시작했고 재차 경고해도 이에 저항하자 이 학교에 ‘정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이슬람의 가치를 지킨다’는 이미지가 생기며 화환과 응원글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쁘산트렌 이슬람 기숙학교의 운영허가를 종교부가 취소한 것에 대해 이슬람사회는 물론 각계의 비난이 빗발쳐 결국 허가취소를 철회한 것도 비슷한 맥락의 사건이다. 절치부심하던 이슬람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2024 총선을 위한 정당등록이 진행될 당시 무슬림표를 의식한 골카르는 국민수권당(PAN)과 손을 잡으면서 정당지지율은 일천하지만 이슬람 색체가 강한 통합개발당(PPP)도 통합인도네시아연대 (KIB)로 끌어들여 일단 무슬림 유권자들에게 어필했고 같은 이유로 그린드라당도 최근 국가각성당(PKB)와 제휴하며 ‘대선을 위한 민족주의와 종교의 성공적 결합’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 와중에 얼마전 급진적 설교내용을 이유로 싱가포르 입국이 거부된 우스탓 압둘 소마드(Ustad Abdul Somad)가 조만간 유숩 깔라 전부통령, 가똣 누르만티요 전 통합군 사령관을 만나기로 하는 등 ‘정치 사파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FPI의 리직시합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지만 조만간 리직시합의 전성기 위상에 필적하는 포지셔닝을 하게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과거 말년의 수카르노는 군과 이슬람,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을 정권유지와 국가운영의 기둥으로 삼아 힘을 나누어 주고 서로 경쟁하게 했다. 그러다가 1965년 9,30 쿠데타의 실패와 함께 공산당이 인도네시아 정치지형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이슬람은 반 세기가 넘도록 군과 함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얼마 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리직시합과 요즘 많은 뉴스를 몰고 다니는 우스탓 압둘 소마드의 행보를 잘 따라가 보면 이번에도 이슬람이 또 다시 킹메이커로서 자리매김할지, 아니면 누군가 선수를 내보내 직접 킹이 되려 할지 그 향방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자바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 하비비 대통령 딱 한 명이 술라웨시 사람 – 그들 모두가 무슬림이었다는 것이다. 우스탓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해서 하나 이상할 게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가진 나라가 ‘다양성 속의 통일’을 논하기에 대선판의 종교적 다양성이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인니투데이ㅣ배동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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