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스 바스웨단(Ainies baswedan) 자카르타 주지사의 발길이 바쁘다.
최근 한 달간 자카르타 주정부가 다양한 일들을 추진했지만 반발에 부딪혀 중단되거나 난관에 봉착한 일이 적지 않았다.
자카르타 주정부 소유 건설사 작프로(Jakpro)가 지난 4년간 손놓고 있던 순터르 폐기물처리시설(소각로)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다. 무아랑앙케 앞바다의 무인도 G섬에 주민을 정착시키고 확장하려는 계획도 내놓았는데 현재 어류서식지 교란을 우려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를 맞았다. 아흐맛 리자 파드리아(Ahmad riza patria) 부지사는 자카르타 매춘영업소를 일소하겠다며 주민신고를 독촉하기도 했다.
주지사령 31호로 추진하는 여러 규정 변화 중 자카르타에 4층 주택 건축을 허용한다는 부분이 특별히 정치권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초대형 빌딩들이 속속 자카르타 시내에 들어서는 것엔 별 말이 없다가 보통 2층으로 짓던 민간주택을 4층으로 짓는다니 자카르타 침하를 가속화시킬 것이라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반응에서 최근 잠재 대선후보로서의 아니스의 약진을 부담스러워하는 정치권 일각의 두려움이 비친다. 아니스는 자카르타 구도심을 과거 식민지 시대 자카르타의 이름인 ‘바타비아’로 바꾸겠다고 말했다가 주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 모든 건 아니스의 자카르타 주지사로서의 임기가 불과 2주 후인 10월 16일 종료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임기종료를 앞두고 업적과 이름을 남기기 위한 작업에 너무 매진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강력한 대선 후보로 손꼽히는 아니스는 만약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nowo) 중부자바 주지사가 투쟁민주당(PDI-P) 안에서 푸안과 메가와티에게 무릎을 꿇고 대선에 나가지 못할 경우 프라보워 수비얀토(Prabowo subianto) 그린드라당 총재와 2024 대선에서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지만 다른 주지사들에 비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중앙 무대에서 좀 더 빨리 내려와야 한다는 치명적 약점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제 주지사 임기종료가 임박한 아니스와 달리 간자르나 리드완 카밀(Ridwan kamil) 서부자바 주지사의 임기는 2023년 9월에 끝난다. 그들 역시 임기를 마치면 대선까지 약 반년가량 야인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아니스보다는 1년 더 대중에게 얼굴을 보일 수 있어 어떤 식으로든 지지율을 제고할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아니스와 마찬가지로 당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리드완 주지사는 지난 5월 장남을 스위스에서 잃은 후 동정표를 얻어 얼마간 지지율이 상승했는데 올해 안에 골카르당에 공식 입당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니스와 간자르가 어쩌기 어려운 공백기간에 자신의 세를 불리려 할 것이다.
리드완 카밀이 골카르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는 대체로 자명하다. 현재 골카르당-국민수권당(PAN)-통합개발당(PPP)의 정당연합체인 통일인도네시아연합(KIB)이 이미 대선판 입장을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었지만 내로라할 대선 후보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물론 통일인도네시아연합이 리드완 주지사 영입 만으로 만족할 리 없다. 골카르가 최근 야당인 복지정의당(PKS)과도 회동하고 KIB 일원인 통합개발당도 복지정의당의 합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KIB 정당연합을 더욱 확장하려 노력하는 것은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유력 무소속 대선후보가 둥지를 틀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선 리드완이 먼저 날아들게 되었지만 정작 KIB 정당연합이 기대하는 것은 아니스의 합류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궁극적으로 투쟁민주당에 침뱉고 떨어져 나올지도 모를 간자르일 수도, 대선필승을 위해 가장 합당한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를 모색하는 프라보워일 수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스는 나스뎀당에 입당하는 것이 확실시되어 보였고 수리야 팔로 나스뎀당 총재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스 영입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의석 20%, 직전 총선 득표율 25%라는 대선판 입장 자격을 얻기 위해 그간 추진해 온 민주당, 복지정의당(PKS)과 정당연합 결성이 난항을 겪고 있다.
나스뎀당 측 인사에 따르면 이들 세 당의 제휴는 80% 이상 확실하지만 대선 후보 선정을 두고 아직 이견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세 당 모두 아니스를 대통령 후보로 마음에 두고 있다면 결국 부통령 후보를 각각 자기 당에서 내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이라 해석된다. 더욱이 연정에 참여한 여당 측 나스뎀당이 정권의 반대편에 선 두 야당과 손을 잡은 것이 처음부터 자연스럽지 않은 그림이었다.
80% 확실하다는 것은 20% 불가능하다는 뜻. 결국 안된다는 의미다. 그 와중에 복지정의당이 골카르당과 만나며 KIB에 합류할 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주자 복지정의당을 놓치면 원래 계획했던 나스뎀-복지정의당-민주당 연계구도로 대선판에 입장할 수 없게 된 나스뎀당과 민주당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아니스로서는 자신을 대선판에 데려갈 수 없게 된 나스뎀당과 손을 잡을 수 없다. 그건 자살행위다.
같은 처지가 되는 민주당 역시 선택지가 크게 줄어든다. 대선판 입장권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투쟁민주당, 그린드라당과 국민각성당(PKB)의 정당연합, 또는 KIB 중 하나와 손을 잡아야 하는데 투쟁민주당과 그린드라당의 막판 제휴 가능성이 매우 커 민주당의 선택지는 둘로 줄어들기 쉽고 어느 쪽에 붙어도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니 민주당 당대표인 장남이 대선판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게 될 상황을 직감한 유도요노 전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정당들이 야합해 두 쌍의 후보만을 내는 부정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정보가 있어 부득이 자신이 ‘하산’하여 현실정치에 간여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아구스 당대표의 지지율이 여전히 하위권에 머무는 한 민주당의 선택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줄어들 것이다.
최근 민주당, 골카르당, 통합개발당 등 여러 정당들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정당 인사들과 접촉한 아니스 주지사는 9월 중순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국내외 매체에 대선 출마의지를 분명히 피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전 프라보워 그린드라당 총재가 국민각성당과 정당연합을 결정하던 날 발표했던 출마선언과는 다르다. 무소속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인도네시아 선거법 상 무소속인 아니스는 출마선언을 할 수 없다. ‘정당이 선택해 준다면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완곡히 에둘러 출마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는 ‘소속 정당은 아직 없지만’이란 단서를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니스 주지사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한 기사가 현지 매체들을 뒤덮은 것은 9월 16일. 자신의 주지사 임기 종료 10월 16일을 딱 한 달 남긴 시점이었다. 즉 아니스 주지사가 각 정당들에게 한 달 내에 자신을 영입하라고 최후통첩은 낸 것에 다름아니다.
간자르 주지사가 푸안을 당 대선후보로 지명하려는 메가와티의 의지를 꺾고 투쟁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거나, 아니면 앙심을 품고 탈당하여 다른 정당과 제휴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 자체를 점치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간자르가 어떤 식으로든 대선구도에서 무력화되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프라보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잠재 후보인 아니스가 10월 16일 이후 무대에서 내려가 조명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KIB나 다른 정당연합들이 두고 볼 리 없다. 매우 높은 확률로 주지사 임기종료 전 영입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하여 10월 16일 인도네시아 대선판도에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 생길 가능성이 크고 아직 1년의 임기를 남긴 다른 주지사들도 앞으로의 행보를 좀 더 진지하게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니투데이ㅣ배동선 논설위원
[저작권자(c) 인니투데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