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아편을 생산해 수출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
인도네시아의 아편 수출은 1948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가 정전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자카르타에 정박한 미국의 렌빌호에서 체결되었으며 이후 렌빌(Renville)협정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은 알렉산더 안드리에스 마라미스(Alexander Andries Maramis)는 하타(Hatta) 1기 내각에 포함되어 있었던 인물로 아미르(Amir Sjarifuddin) 내각에서도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이 시기 옹 엥 디에(Ong Eng Die) 재무부차관과 함께 전쟁 및 협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해외에서 아편과 금 거래가 시작된 건 하타1기때 부터다. 재무부에서 발행한 “연대별 재무부 조직(Organisasi Kementerian Keuangan – Dari Masa Ke Masa)”이라는 책에 따르면 아편 수출은 마라 미스 장관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렌빌 협상이 불발될 경우 자금을 확보를 위해 하타 부통령은 재무부 장관 마라미스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마라미스는 아편을 통해 다른 나라와 경제적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 책에 따르면 1948년 2월부터 마라미스는 해외로 아편과 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 아편은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 시절부터 있었던 살렘바(Salemba)의 아편 공장에서 생산이 되었으며 세계 각지로 수출된 생아편의 양은 22톤에 달한다. 당시 아편을 판매해 거둔 수익 중 일부는 공무원 급여로 지급됐다. 또한 싱가포르, 방콕, 랑군, 뉴델리, 카이로, 런던 및 뉴욕 등 각지에 나가있는 인도네시아 정부 대표들에게 활동 자금으로 전달 되었으며 무기를 구입하는 데도 사용됐다.
살렘바의 아편공장은 어떤 곳?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아편은 금지 품목이 아니었다. 심지어 당시 네덜란드인은 꼬따 바타비아 센트룸(Kota Batavia Centrum)에 아편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이곳은 지금의 UI 대학과 인접한 자카르타 중부의 살렘바(Salemba) 지역이다. 이곳에서 매일 수천 개의 아편 덩어리가 생산되었으며 철도를 통해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유통됐다. 이 때 살렘바역은 아편 유통을 위한 중요한 거점이었다.
동쪽 경로는 빠사르 스닌(Pasar Senen)을 경유하여 자띠느가라 브까시(jatinegara-Bekasi)로 이어졌으며, 서쪽 경로는 따나아방(Tanah Abang)을 거쳐 안예르 반뜬(Anyer-Banten)으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보고르로 가는 경로 있었다.
그러나 1913년 네덜란드 동인도 철도회사 스타츠포르웨겐(Staatssporwegen)이 자카르타의 철노 노선 정비를 시작하면서 몇몇 역이 정리되고 1918년 5월 1일에 망가라이(Manggarai)역이 만들어졌다. 또한 이때 기차를 수리하는 장소로 발라이 야사 망가라이(Balai Yasa Manggarai)가 건설되었고, 기존 경로와 연결하여 자띠느가라(Jatinegara)로 가는 철도도 확장되었다. 이로써 살렘바(Salemba) 역의 역할은 망가라이(Manggarai) 역으로 대체되었다.
1925년도 바타비아(Batavia) 지도를 보면 살렘바-빠사르스닌(Stasiun Salemba ? Stasiun Pasar Senen) 구간 지선이 운영이 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45년도 지도에도 살렘바-자티느가라(Stasiun Salemba – Jatinegara) 지선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렘바역은 아편을 수송을 위해 여전히 운영되었다. 살렘방 역의 운행이 중단된 건 1981년 9월 2일 살렘바 아편 공장(Salemba Opium Factory)이 문을 닫은 직후다.
현재 이 오래된 아편 공장건물은 인도네시아 대학(UI)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속의 살렘바 역의 흔적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인니투데이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