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실시한 사이풀 무자니 연구컨설팅(SMRC)의 2024 대선 당선가능성 조사에서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bowo) 중부자바 주지사는 25.5%를 보여, 16.7%의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그린드라당 총재, 14.4%의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자카르타 주지사를 크게 앞섰다. 간자르의 상승세로 볼 때 만약 오늘 당장 대통령선거를 한다면 그의 당선 가능성은 누구보다도 높을 것이다.
1968년생인 그는 현재 만 54세, 50대 중반이다. 30대 중반이던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투쟁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3년 8월 이후 10년간 중부자바 주지사로 가장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을 경영하며 중앙정부와 합을 맞췄다. 오늘 당장 대통령이 되어도 업무능력이나 경험 면에서 대통령 업무수행에 큰 문제가 없을 터다.
그런 그가 1973년생, 이제 막 불혹이 된 푸안 마하라니와 당내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 그것도 상당히 불리한 국면을 맞고 있는 모습은 사뭇 아이러니컬하다.
푸안 역시 30대 중반이던 2009년에 투쟁민주당 의원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인 2012년 1월 초선인 그가 투쟁민주당 원내대표가 된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조코 위도도 대통령 1차 임기 5년 내내 인권문화구축조정장관을 지냈고 조코위가 재선되자 다시 국회로 돌아가 재선을 하면서 곧바로 집권여당 지분으로 국회의장에 올랐다.
초선 원내대표, 재선 국회의장이란 누구도 감히 꿈꾸기 힘든 이력이다. 그리고 이제 푸안은 한 자릿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의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 자리를 코 앞에 두고 있다.
나이도 많고 경륜도 긴 남자의원들 사이에서 푸안이 이례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투쟁민주당 총재직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어머니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oekarnoputri)와 지금도 인도네시아 공화국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할아버지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후광 때문이다. 그 사이 푸안 자신의 자질이나 능력을 전혀 보이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수카르노와 메가와티 없이 그렇게 승승장구할 수 없었을 것임은 푸안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투쟁민주당 엘리트 진영에서는 날로 하늘을 찌르는 간자르의 인기가 못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메가와티의 뜻이 간자르가 아닌 푸안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자르는 당에서 곧잘 모욕을 당하곤 한다. 전당대회 같은 곳에서 메가와티가 굳이 그를 콕 집어 만장한 다른 당원들 앞에서 그에게 불리한 당규를 낭독하도록 시키는가 하면, 중부자바에서 열리는 당 행사에 그 지역 주지사인 간자르를 아예 초청도 하지 않았다. 메가와티와 당 지도부가 간자르를 배척하라는 신호를 전체 당원들에게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이다.
2024 대선에서 투쟁민주당에 승기를 가져다 줄 유력 후보를 밀어내고, 대신 모든 여론조사에서 당선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푸안 마하라니를 기어이 대선판에 밀어 넣으려는 메가와티의 몽니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당내 알력과 파열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푸안 마하라니를 옹위하는 세력의 중심은 국회의원들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자당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는 것보다 자신이 국회의원에 재선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투쟁민주당 의원들로서는 대선 후보든, 국회의원 후보든, 그 공천권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는 메가와티의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그들이 푸안을 대선 후보로 밀어올리는 것은 그녀의 당선을 확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노력의 대가로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중선거구 선거제도 시스템을 통해 높은 확율로 자기 의석을 지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푸안을 지지하는 엘리트 진영 ‘대령위원회’
최근 며칠 간 투쟁민주당에서 푸안 마하라니를 지지하는 진영인 ‘대령위원회’라는 명칭이 자주 거론되었다. 투쟁민주당 원내대표 우뚯 아디안토(Utut Adianto)와 앞서 언급한 원내 사무국장 밤방 우르얀토(Bambang Wuryanto)를 중심으로 한 대령위원회는 현재 12명 회원이 가입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투쟁민주당은 2019 총선에서 의석 128석을 얻었으니 그중 10%가 조금 안되는 숫자가 가입해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이라도 아무나 다 대령위원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만큼 자부심과 자존감이 대단한 집단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중령이나 대위도 아니고 하필이면 ‘대령위원회’일까? 그들의 목적은 푸안 마하라니를 2024 대선 대통령 후보로 밀어 올리는 것인데 즉 장군을 만들 조직이라서 대령위원회일까? 장군, 즉 대통령이나 각료는 아직 되지 못했지만 그 밑에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무지렁이 당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언젠가 별을 달지도 모를 ‘대령’쯤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들의 작명센스에서 오만한 엘리트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간자르 지지 진영 ‘상병평의회’
그러자 한편 간자르 측 지지자들은 상병평의회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상병평의회가 될 것입니다. 당내 가장 잘난 분들이 대령위원회를 만드시는데 우린 상병평의회가 딱이죠.” 이렇게 말하는 간자르 프라노워 매니아(GP Mania) 자원봉사대장 이마누엘 에벤에제르(Immanuel Ebenezer)는 민주주의의 전통적 맥락 상 항상 민중들이 승리했으므로 엘리트들의 모임인 대령위원회는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대에서도 다수는 대령보다 상병들이죠.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지를 따르는 원칙입니다.” 오래 전 병역을 완수하며 군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메가와티와 푸안 역시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현재 ‘수카르노 가문의 엘리트 정당’이 되어버린 투쟁민주당은 일반 민중을 위한 정당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상병평의회가 실제로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간자르 주지사의 지지자들이 당 지도부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분명히 피력했다는 것은 큰 의의를 갖는다. 푸안을 밀어준다는 명목으로 간자르를 짓밟으면 당내에 가만이 있지 않을 사람들이 군대의 상병들만큼이나 많을 것임을 보여주여준 것이다. 비록 간자르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요구했지만 내심 흐뭇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갑자기 불거진 대령위원회와 상병평의회의 대결구도로 투쟁민주당 지도부도 화들짝 놀란 듯하다. 하스토 크리스티안토(Hasto Kristiyanto) 투쟁민주당 사무국장은 당내에 대령위원회 같은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수사나 농담에 불과하다며 그 존재를 부인하면서 당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그런 위원회들이 아니라 오직 메가와티 총재의 배타적 권한이라고 다시 한번 못박았다. 당내 정-부통령 후보를 선정하는 데에 메가와티의 의견보다 선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푸안을 투쟁민주당 대선 후보로 밀어 올리려는 메가와티의 뜻을 관철될 것이란 얘기다. 즉, 말로는 대령위원회의 존재를 부인하지만 내심 그들의 활동을 환영한다는 뜻인 셈이다.
투쟁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위업을 승계할 후계자를 애타게 기대하는 조코위 대통령의 한숨이 느껴진다. 푸안은 턱도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대안은 간자르일까? 프라보워일까?
인니투데이ㅣ배동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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