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최대 504명 살해, 미군 1명만 유죄…
종신형 후 감형
베트남전에서 발생한 미군에 의한 민간인 대량 학살사건인 ‘미라이(My Lai) 학살’로 유일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던 윌리엄 켈리가 사망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사회보장국(SSA)의 자료를 인용해 켈리가 지난 4월 28일 80세의 나이로 플로리다주 게인스빌의 한 호스피스에서 숨을 거뒀다면서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플로리다주 앨라추아 카운티 보건국이 발행한 켈리의 사망확인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1968년에 발생한 미라이 학살 당시 소위로 임관한 지 4개월 2주밖에 되지 않았던 켈리는 1971년 학살 현장에 있던 미군 가운데 유일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
켈리는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두차례의 감형을 받았으며 가택연금 3년 반 만에 결국 사면받았다.
켈리는 이후 군사재판이 열린 군부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보석상으로 살았으며 지난 2009년 처음으로 학살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부분은 인터뷰도 거절한 채 조용히 생활했다.
미라이 학살은 지난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선미(Son My) 지역 미라이 마을에서 발생했다.
당시 미 육군 제23 보병사단 11보병여단 예하 1대대 찰리 중대는 미라이 마을에서 어린이와 부녀자 등 최대 504명의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
미군은 베트남전 최대의 민간인 학살사건인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으나 현장에 동행했던 종군기자 로널드 헤벌이 학살 장면 사진을 ‘라이프’에 공개하고 시모어 허시 기자가 1969년 11월 사건 진상을 폭로하면서 미라이 학살 사건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미 육군은 진상조사를 통해 미라이 학살로 인해 347명의 민간이 희생됐다고 결론 내렸으나 베트남은 희생자가 504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미군의 잔혹성과 비윤리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와 함께 미국민 사이에 반전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